마음에 뭔가 부대끼는 일이 있을 때, 주로 정리정돈하는 습이 있다. 문제를 잊고 정리를 하다보면 바른 해결책이 나오곤 한다. 오전내내 뒤뜰의 풀을 뽑고도 모자라, 부엌의 벽장 하나를 다 뒤집어 엎었다. 주로 마른 버섯, 미역, 국수 같은 걸 넣어두는 장인데, 그 안쪽에서 빵가루 봉지 하나를 발견했다. 누군가 사다놨지만, 절에서 빵가루 먹을 일이 없어 밀리다보니 오래 잊혀진 것 같다.
무심코 유통기한을 봤는데 무려 이년이 지났다. 음식 버리는 일이 무엇보다 시은이 무겁게 느껴지는 중의 습으로는 절대로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계속 떠밀어두는 것도 아니다 싶어, 두 눈 딱 감고 버렸다. 유통기한은 넘겼지만은 빵가루는 너무 멀쩡해보여서 다시 줏고 싶은 맘이 간절했다. 에잇, 과감히 잊기로 했다.
어쨌거나 거의 모든 포장상품에는 유통기한이라는 것이 적혀있다. 그걸 왜 적는지 이 중은 모른다. 그 기간 안에 먹지 않으면 그닥 좋지 않을 거 같다는 정도만 알 뿐, 자세히 알고싶지도 않다. 오래전, 상점에 나와있던 유통기한이 지난 물건들은 어디로 가나, 궁금했던 적이 있는데, 편의점에서 일하던 후배의 말에 의하면 모두 폐기 된다고 했다.
사실 확인은 안해봤다. 암튼, 유통기한이 있는 건 유통 한도가 있다는 것이다.
인생은 어떤가. 인생에도 유통기한이 있는가. 있다면 있을 것이다. 유아기 유년기, 장년기, 노년기, 결혼 적령기, 군복무기, 등등으로 구분지어진, 일종의 삶의 유통기한 말이다. 되도록이면 정해진 그 시기 안에 할 수 있는 것은 그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 늙어서 사춘기 같은 거 한다면서 반항하고 그러면, 그 좀 상한 사람 처럼 보이지 않겠나. 하지만 인생에는 딱히 정해진 유통기한이 없다. 때론 우리네 삶에도 유통기한이 좀 있었으면 하고 생각될 때가 있다.
이를테면 날짜 지난 일, 오래된 안좋은 기억들은 간직하지 말고 과감하게 좀 버리고 살았으면 좋겠다,
새크라멘토 불자들 사이에는 묵은 감정들이 많다. 영화사 이전의 일들이다. 아직도 그 감정을 끌어 안고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 일이 때때로 내 마음을 성가시게 한다. 인생 공수래 공수거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거다. 그거 혹시 아는가. 우리는 날 때는 손을 쥐고 태어나지만 죽을 때는 펴고 간다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버리는 데 익숙해지고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묵혀 두는 것은 안 했으면 좋겠다.
특히 묵은 감정 같은 것은 좀 버렸으면 좋겠다. 유통기한이 지난 거 아니겠나. 그거 곰곰 되새기고 있어봐야 맘만 더 상하고, 건강 해치고 그럴 뿐이다. 그때는 몸 자체를 버려야 하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 야부스님은 ‘벼랑에서 손을 놓아야 비로소 장부로다’ 했다. 버릴 때는 과감히 좀 버려주자. 이 정도 과감하기가 어려우면, 덜덜덜 떨면서라도 좀 버리고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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