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열린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통역을 맡게 된 나는 역사적인 현장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경제적 불황으로 인한 절망감과 불안감을 잠시 잊게 하고 야구팬들을 용광로 속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던 이벤트였다.
중립 그라운드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그것도 양키스와 더불어 메이저 리그를 대표하는 LA의 다저스 스테디엄에서 치러진 WBC 결승전은 한일 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경기였다.
한일 감정, 즉 한일 간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두 나라의 국민정서를 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일본어, 스페인어 등 다른 국가 언어 통역사들과 함께 관중석 사이를 드나들며 게임을 관전하고 기자회견을 동시통역하면서 여러 가지를 느꼈다.
일본과의 과거사에 따른 기억과 사연들이 한국인들 속에 뼈 속 깊숙이 전류처럼 흐르고 있다는 것을 이런 역사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나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더욱이 같이 통역을 하던 일본어 통역사의 말대로 일본인과 한국인간의 견제와 경쟁이 피부에 그대로 와 닿았다. 게임 자체는 역전과 재역전을 거듭하는 시소였지만 응원전에서 만큼은 세계가 인정하는 ‘대~ 한민국’의 대승리였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열렬하고 조직적인 한국인 특유의 ‘통 큰’ 응원에 비해, 특색은 있지만 개인주의적이고 규모가 작은 일본인 특유의 ‘왜소한 응원은 열광과 일사분란 함에서 현저히 대조를 보였다. ‘대~한민국’이라는 힘찬 구호에 대응할만한 것이 없어 ‘Japan’ 혹은 ‘이치로’ 라고 할 뿐이었다.
일본 통역사는 “그것은 가히 위협적이었고 한국인들의 응원의 열기로 일본은 자리를 잃었다”고 표현했다. 스포츠를 통해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대의 쾌감은 체내에서 직접 생성되는 엔돌핀을 통해 무언가를 뱉어내 듯 방출하는 카타르시스다.
한국은 아쉽게 패했다. 이승엽과 박찬호의 빈자리가 느껴지기도 했다. 최대의 저격수나 메이저 리그의 경험이 있는 투수가 없었던 한국팀은 마치 한 손을 뒤로 묶고 게임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두들 열심히 싸웠고 자부심을 안겨줬다. 감히 ‘싸울아비’와 ‘사무라이’의 전쟁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WBC 결승전이었다.
WBC의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벌써 한국의 야구 유망주들에 대해 미국 메이저리그가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준우승의 아쉬움이 조금은 가시는 것 같다. WBC를 통해 우리가 얻은 것은 한국 야구가 세계무대에서 당당히 한 몫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메이저 리거들을 대거 배출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이러 자신감은 다음 대회를 위한 아주 소중한 자산이다.
2013년에도 또 하나의 신화가 탄생하길 바라며 전 세계의 야구팬들이 ‘대~한민국’을 외쳐 대는 날까지 힘차게 정진하길 바란다. 한국 야구의 미래는 떠오르는 태양이 아닐 수 없다.
폴 이/이통·번역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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