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살이를 시작한 후 색다른 느낌 중의 하나는 이곳의 집 구조에 대해서였다. 한국에서는 대문 틈새로 마당을 훑어볼 수 있는 데 비해 미국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서야 마당이 비밀스럽게 집에 안겨 있다는 것이 특별하게 받아들여졌다. 밖에서는 안보이지만 저마다의 특성에 맞게 가꾸어진 마당이 안에 들어와서야 살포시 베일을 벗듯 바깥사람들에게 보여 진다는 것이 참 좋았다. 밖에서 언뜻 보는 집은 아무것도 아니고 그 안에 감추어져 있는 마당과 방들을 들여다보아야 그 집의 진가를 확인하는 셈인 것이다.
사람도 이와 같아서 겉으로 봐서는 그 사람의 특성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집에 들어와 신발을 벗고 뒷마당까지 나아가 고개를 내밀고 들여다보는 수고를 거쳐야 뒷마당을 볼 수 있듯 사람도 관심을 기울이고 시간과 정성을 기울여야 그 사람의 뒷마당을 볼 수가 있다. 그 사람의 뒷마당을 들여다봐야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소설도 아닌 것이 잘 팔리던 책이 있었는데 그 무렵에는 여행지 곳곳에서 그 책을 끼고 다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책을 지은 분의 주장은 아는 만큼 보인다였는데 나는 그 말이 사람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의 뒷마당을 알고 나면 그 사람이 보이게 된다. 보이게 되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게 되면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이곳 한국 학교에서는 맡은 반 아이들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일주일에 한번 3시간을 몰아보고 그 뒤에는 볼 일이 없으니 아이들의 성격이나 뒷마당을 파악하기가 역부족이다. 그래도 수업 시간에 발표하는 내용이나 글쓰기 내용, 일기 등을 통해 아이들의 뒷마당을 파악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며칠 전 수업 중에 한 아이가 축구하는 내용에 대한 시를 읽고 느낌을 발표하는데 말이 참 처연하기 그지없다.
너무 평화로워 보여요. 나도 아무 걱정 없이 이렇게 공을 차고 놀아봤으면 좋겠어요.
아니, 그 나이에 무슨 걱정이 많길래 축구공 하나 걱정 없이 뻥 차지를 못한다는 건지. 속사정인즉슨, 너무 바빠 놀 시간이 없단다. 스타급 연예인도 아니고 뭔 스케줄이 그리 빡빡한 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뒷마당을 살펴보듯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가히 살인적이다. 가끔씩 신경질적이고 의욕이 없어 보이는 아이의 행동이 이해가 된다. 억지춘향이 식으로 모든 것을 해내려니 늘 소화불량 인생이다.
소화제를 건네듯 학생 앞에서 주책없이 재롱을 떨고 웃게 해준다.
또 다른 아이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사춘기와 맞물려 표정이 어둡고 반항적이었다. 하지만 다른 경로를 통해 그 집안의 개인적인 사정을 알고 난 뒤에는 그 아이의 표정 뒤에 숨겨진 아픔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그 과정을 잘 이겨내기를 빌어주었다. 볼 때마다 무엇 하나 도와주지 못하고 썰렁한 농담이나 하는 선생님이 스스로도 참 못났구나, 못났구나 싶지만 마음은 늘 어깨를 다독거려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싶다. 세상 어디선가 너를 위하여 빌어주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렇게 아이들의 뒷마당을 들여다보고 나면 재미있는 사연도 많아서 혼자 비실비실 웃기도 하지만 안타까운 일도 많고 겉으로 표현은 안 해도 사랑하는 마음이 넘쳐나기도 한다. 사연이야 어찌됐건 한국학교라는 울타리에서는 위로 받고 힘을 얻어 돌아갔으면 싶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