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오는 문턱의 봄볕이 마음의 기지개를 키게하고 자연의 향기에 취하게 하는 주말 오후이다.
아들아이는 일찌감치 볼링을 좋아하는 아빠따라 볼링장으로 향하고
걷기 좋아하는 딸아이와 함께 산 안토니오 팍으로 차를 몰았다.
물 한병과 가벼운 옷차림 그리고 일주일동안 쌓인 이야기 보따리 하나면
준비는 끝난 셈이다. 비교적 완만한 트레일을 따라 이제 제 어미의 품을 떠나려고 서서히 준비하는 사춘기의 딸아이와 함께 걷는 길이 시작된다.
친정붙이라고는 하나 없던 이민 초기의 외로운 나에게 첫딸이란 신이 내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었다. 하루종일 일끝내고 돌아오는 남편만 기다리던 시절의 나의 유일한 말동무가 되어 주던 나의 첫아기, 내 품안에 늘 함께 있을 것 만 같았던 그아이가 이제는 훌쩍 커버려 달걀속에서 막 부화되는 병아리처럼 이제 세상을 향해 자신만의 손짓 발짓 마음짓을 휘젖으려 하고 있다.
결혼전에 가까운 친구들과 그런 꿈을 나누었었지. 결혼해서 첫딸이 생기면 정말 친구같은 엄마가 되어 친구같은 딸과 삶을 공유하고 싶다라는.
지난 한주일동안 미처 못다 나눈 이야기를 부지런히 토해내는 딸아이에게 귀를 기울이며 함께 걸어 가고 있다. 지난하이킹때 눈여겨 봐 두었던 풀한포기 꼬들꼬들하게 자리매김하고 있고,접시처럼 넙적한 잎사귀위에 보라색꽃을 수줍게 틔운 들꼿들, 겨우내 쌓였던 낙엽들 사이로 상쾌하게 엉기어 붙은 엉겅퀴들, 산행을 즐기기에 충분한 표정들이다. 맑은 시냇물에 손도 담그고 돌아서 돌아서 두어시간 산행끝자락, 그 끝에 두갈래길이 나있었다. 간간히 불어오는 미풍에 땀도 식히고 물한모금으로 갈증도 풀겸 그루터기위에 잠시 몸을 내맡겼다.
가지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노란숲속에 두갈래 길이 있었네 (중략)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길을 탰했네/ 그길에는 풀이 더있고 사람이 걸은 흔적이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네/ (중략) 그 날 아침 두길에는 낙엽을 밟은 흔적은 없었네/ (중략)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하겠지. 숲속에 두갈래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때문에 모든것이 달라졌다고.
딸아이가 6학년때 암송한 싯귀인데 내가 처음 이시를 만나게 된것은 아마
중학교 국어시간이었을게다. 삶에 대한 호기심이 풍부하고 꿈많던 어린시절의 감성을 참 많이도 자극했던 시중의 하나이다. 삶의 관찰이 시작된 그이후로 삶이 결코 만만하지않음을 얼마나 많이 경험하고 느끼며 살아왔던가.
삶속에 연속선처럼 나타나는 수많은 실패와 좌절과 극복의 크고 작은
순간에 또 얼마나 많은 후회와 아쉬움과 환희와 보람을 깨달으며 살아왔던가
수없이 넘어지고 또 다시 일어서면서 이제야 겨우 삶의 진의 (眞意)를 알아가고 있는데 이 어린 소녀의 부풀은 가슴에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을까
땀이 조금 식었는지 아이가 불쑥 어린시절의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봄볕이 따사한 어느날, 엄마가 자신을 데리고 가까운 팍에 산책을 나갔던 적이 있었단다. 총총거리는 발걸음으로 앞서가던 자신이 넘어졌는데 얼른 일어나 뒤를 돌아보니 엄마가 놀래서 뛰어 오시더란다. 그래서 마음이 놓여서 울지않고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일어설 수 있었다고. 넘어진 자신의 아픔과 함께하려는 엄마의 표정과 마주치는 순간 일어날 용기를 얻을 수있었다고.
우리는 먼지가 조금 일지만 밤일하고 낮잠자는 부엉이집도 구경할 겸 집토끼가 있는 농장쪽 길을 택해 함께 걸어 내려 왔다. 나보다 아이가 더 좋아하는 길이니까.
친구같은 엄마가 있어서 마음속을 털고 나니 깃털처럼 홀가분해졌고 새로운 한주를 신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아이의 해맑은 모습이 엄마로서의 나의 존재감을 더욱 느끼게 해주어 참으로 다행한 산행이었다. 딸아이와 함께 걷는길이 감사하다 4월의 햇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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