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을 때는 거의 단 하루도 핸드폰 없이 외출을 해본 적이 없는 듯 싶다. 어쩌다가 외출하면서 핸드폰을 잊었을 경우에는 설령 약속시간에 늦게 되더라도 가던 발길을 돌려 다시 핸드폰을 가지러 돌아가곤 했으니 말이다. 그러고도 피치 못하게 핸드폰을 잠시 어딘가에 두고 온 경우에는 다시 핸드폰을 손에 쥘 때까지 초조하고 불안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딱히 연락이 올 데도 없고 꼭 걸어야 할 곳도 없는 상황에서조차 말이다. 그리고는 하루 종일 온 신경은 집에 있는 핸드폰에 가있고 허둥지둥 집으로 돌아와 핸드폰의 부재중전화부터 확인을 하곤 했다. 이쯤되면 중독이다. 그런 나였기에 미국 와서도 제일 먼저 한 일이 바로 핸드폰 개통이었다. 그야말로 연락 올 곳이라고는 없는데도 개통한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는 집에서건 밖에서건 몸에서 떼질 않았다.
그런데 이 핸드폰이 남겨야 할 연락처에만 사용되고 그 본연의 걸고 받는 일에는 좀처럼 쓰이질 않는게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에는 가족도 없고 가까운 지인 몇명 뿐이니 한국에서처럼 전화로 수다 떨 일도 없고 즐겨 하던 문자 보내기도 익숙치 않은 영어 탓에 멀리하게 되었기 떄문이다. 이제 내 핸드폰은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 진정한 캔디폰으로 거듭났다. 가끔씩 울리는 벨소리 조차 내가 지난 2년간 한 벨소리만을 설정했던 탓에 아직 익숙치가 않아 못 받기 일쑤여서 한국의 가족들에게 제발 전화 좀 받으라는 잔소리도 심심치 않게 듣곤 한다.
처음엔 어디 전화 온 곳 없나 수시로 핸드폰을 확인하고 한국에서처럼 잠깐 집 앞을 나갈 때도 손에 꼭 쥐고 나가고 욕조에 몸을 담그고 하루의 피로를 푸는 휴식의 시간조차에도 핸드폰은 손에 쥐고 있고, 심지어는 잘 때도 머리맡 가까운 곳에 두고는 잠들곤 했다. 하지만 점점 걸고 받을 일이 현저히 줄어드니 핸드폰도 내게 더 이상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어버렸다.
핸드폰을 넣어야 하기에 가까운 곳 외출 할 때도 작은 가방이라도 메야 했고 집 앞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면서도 손엔 핸드폰을 쥐고 나갔었는데, 이젠 이런 여러가지의 낯설음으로 인해 내 손에서 핸드폰이 사라진지 꽤 되었다. 집 앞 산책길이며, 남편과 아이 마중 길에도 두 손이 가볍다. 두 손만 가벼워진 것이 아니다. 마음까지 훨훨 날아갈 듯 가볍다.
오늘 아이 프리스쿨 픽업을 도보로 다녀오며 따사로운 봄볕에 자유로워진 두 팔을 흔들며 주변 나무 냄새 꽃 냄새에 취해 타박타박 걷는 내 발걸음 소리조차 즐거워 걷고 뛰기를 반복하며 얼마나 마음이 가볍던지. 단지 핸드폰 하나 내려놨을 뿐인데 이렇게 홀가분한 기분이 든다는게 참으로 놀라웠다. 언제나 얽메여 있던 무언가에서 해방되었을 때의 자유로움이란 아무리 작은 핸드폰이라 할지라도 예상보다 상쾌하고 느껴지는 해방감이 훨씬 컸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게 없으면 생활이 안되는 중독증세를 보이면 그렇게 메이는 만큼 삶이 고단하고 피곤해진다.
비단 핸드폰뿐만 아니라 내 스스로를 얽어메여 힘들게 만드는 주변을 한번쯤은 둘러보고 과감히 내려놓고 정리할 때가 필요한 듯 싶다. 내게 지금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일까. 곁에서 원고 다썼냐며 묻는 남편은 피곤이 몰려오는 이 늦은 시간에 배고프다며 밤참을 재촉한다. 가능만하다면 단 며칠간만이라도 남편을 살짝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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