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리 슬픈지 날씨조차 변덕을 부리며 몸살을 앓는다. 강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더니만 갑작스레 비가 내리고 또 봄바람에 꽃잎이 여기저기 화려하게 흩날리는 잔인한 4월. 꽃잎이 맥없이 떨어져 너울너울 날아가듯 요즘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봄바람 타고 꽃잎 되어 하늘나라로 날아갔다는 소식을 접한다.
많은 죽음을 보면서도 망각의 동물인 우리는 또 잊어 버리고 한없는 욕심을 내며 마치 천년 만년 살것처럼 상처와 아픔을 주며 허겁지겁 살기에 정신이 없다. 고인을 보내고 오신 어느 분이 인생이 참 허무하다며 “사람은 항상 죽을 죽을 준비를 하면서 살아야 돼.”하신다. 그러면서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만약에 일주일 밖에 살 수 없다면 당신들은 무얼하겠수?” 라고 질문을 하신다. 사람들은 저마다 “난 혼자 실컷 여행하며 갖고 있던 돈을 원없이 펑펑 쓰다가 죽겠다.”
“난 예쁜 여자가 있는 술집에서 실컷 타락해 보다가 죽겠다.”
“나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용서를 빌고 사랑한다는 말을 아낌없이 할 것 같아.”
“나는 남은 자들이 고생하지 않도록 내 주변을 다 정리하겠어.”
갑자기 엉뚱하게 물어보는 그분의 질문에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오는 대답들이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마지막 길을 준비할 수 있기에 주어진 일주일을 미리 알았음도 대단한 축복이다.
전에 다니던 노엘 장로교회 사모님을 만났다. 몇 해전 목사님을 하늘나라로 보낸 후 깊은 슬픔에서 어느정도 회복 되신듯 여유를 보이셨다. 많이 수척해 지셨고 더욱 깊어진 눈빛이셨다.
“목사님과의 삶을 책으로 엮어봤어요.” 하며 눈물가득 가슴으로 쓴 자신의 책을 부끄러워 하며 내미시는 거였다.
나는 그분의 죽음을 잊을수가 없다. 죽음 직전까지 고집을 부리며 설교하시는 내용은 “나는 목회하면서 교회부흥에 더 욕심을 냈고 하나님을 빌어 사람을 더 의식했던 설교를 후회합니다. 이젠 진정 주님의 종으로 성도를 내자식으로 여기며 아주 귀한 음식을 먹이는 심정으로 설교합니다. 투병 중에도 피를 토하듯 하신 그말씀은 몇해가 지난 내 가슴에 아직도 깊이 박혀 있다. 그리고는 그분은 기쁘고 가볍게 가셨고 죽음 앞에서도 담대하게 준비된 자로서 일주일의 값진 장식 아니겠는가.
반면에 내인생에 또 다른 영향을 준 친척의 죽음이 생각난다. 내가 일곱살 되던해 겨우 초등학교를 들어갈 때 가까운 친척이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자녀 전학 때문에 안내하는 나를 앞세우고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친척은 비닐 우산을 달랑 하나만 사서 내앞에서 둘만 쓰고 가는거였다.
비를 홈빡 맞은채 뒤쫒아 걸었던 나는 친척의 이기적인 냉정함에 더욱 추웠고 어린 걸음으로 집은 아득하게 멀기만 해 덕분에 나는 며칠째 심한 감기 몸살을 앓았다. 어린 마음에 그날 일이 어찌나 서운 했던지 얼마후 그분이 지병으로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통곡하는 문상객 속에서 그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무감각, 무의식 속에 음식만 먹고 있었던 그 순간이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어린 눈에 비친 친척의 죽음은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일이 되었다. 사람들의 기억속에 명예롭고 유능한 사람으로 기억되기 보다는 적어도 원망의 대상으로는 남아있지 말아야 되지 않겠나.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고 또 죽어가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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