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필자의 생일이 있었다.
유학생으로 가족과 떨어져 맞는 생일이라 마음이 허전했다. 어릴 때 마치 어미 캥거루의 주머니 속에 든 것처럼 엄마 품에 안겨 있을 때는 ‘주머니’ 저 밖의 세상이 마냥 신기해 보였다. 뭔가 재미있는 일들로 가득찬 듯 보이기도 했고,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다양한 어떤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 얼른 부모의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바깥세상으로 나와 이런저런 경험을 하다보니 따듯했던 엄마의 주머니가 한 없이 그립다.
딸의 생일을 기억해 먼저 전화를 주신 엄마와 통화하면서도 나는 다시 어린 아이가 되어본다. 괜히 조금 피곤 했던 지난주에 오만 가지 병이라도 났었던 것처럼 엄살도 부려본다. 안락하고 푸근한 주머니 속의 기억에 매달리고 싶은 마음 탓이다.
가족과 떨어져 맞는 생일의 허전함은 많은 것들을 생각나게 한다.
우선 엄마의 미역국이 그립다. 수능 시험날 아침 소화 잘되라고 미역국에 밥을 챙겨주신 어머니께‘미역국 먹고 시험에 미끄러지라는 거야’라며 말도 안되는 트집을 부렸었다. 예민한 사춘기 정서에 수험생 스트레스까지 겹쳐 그랬던 것이라 변명을 해보지만, 그때의 버르장머리 없던 기억과 함께 엄마의 깊은 손맛과 속내가 담긴 미역국 생각이 간절해진다. 입시날 행여 딸애의 기분이라도 망칠까 꾸중 한마디 없이 웃으시며 시험장까지 데려다 주시고, 어깨를 토닥거려 주시던 기억이 바다처럼 깊으면서도 부드러운 엄마 특유의 미역국 맛을 떠올리게 한 것일까.
생각해보니 엄마에게 난 참 야속하고 이기적인 딸이었다. 첫사랑과 헤어진 후 아픈 마음 가누질 못해 엄마 앞에서 엉엉 울면서 신세 한탄을 했었다. 그 땐 내 감정에 겨워 엄마의 건강이 몹시 좋지 않다는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대학생활도 그랬지만 미스코리아 활동 당시도 항상 엄마일 보다 내일이 늘 우선이었다. 타지에서 홀로 맞는 생일은 이처럼 ‘불효의 기억’으로 부끄럽고, 아리고, 아팠다.
그러고 보면 나는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부모님으로부터 제대로 독립도 하지 못하고 27년을 한결같이 ‘어린 딸’ 역할만 고집해왔다. 몇 년 간 열심히 활동한 돈을 모아 홀로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께 집을 사드렸다는 어린 가수 의 뉴스기사에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5월 달, 어버이날과 생일을 지내면서 부모님을 다시 생각해 본다. 내게 부모님과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나는 제대로 실감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마치 공기처럼, 너무도 당연히 여겨져 무심히 지나쳐 버린 ‘사랑’이었다. 캥거루 주머니에서 멀리 벗어나 뒤를 바라보니 이제야 부모님의 존재가 환하게 눈에 잡히고, 가늠하기 힘든 그 사랑의 부피가 느껴진다.
‘부모님이 지금 너와 함께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돼. ‘약주를 드시고 오시는 날마다 딸을 앞에 앉혀 놓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되풀이 하시던 아버님의 말씀이 강요처럼 들려 늘 귀찮고 성가셨다. 하지만 아빠 말씀처럼 내 정신적 안정감과 심리적 자신감의 근원이 부모님의 변함없는 사랑임을 이제는 알고 있다.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나는 잠시 머물다 ‘떠난 사랑’을 아파하며 엄마 앞에서 섧게 울었지만, 부모님의 ‘만년 사랑’에 제대로 감사의 마음을 표시했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엄마에게 조차 ‘사랑한다’는 표현에 인색했다. 그저 죄송할 뿐이다.
당신의 내리사랑은 물질로 보상되지 않는다.
어느 신용카드회사의 광고처럼 사랑은 가격을 매길 수 없다. 그래서 사랑은 사랑으로 갚아야 하는 법이다.
’사랑한다’고 쓴 엽서 한장에 감동받고, 안부 인사 전화 한통에도 기뻐하시는 분들이 부모님이다. 바빠서 혹은 멀리 있다는 이유로 소홀했던 부모님께 오늘이라도 전화 한 통화 하고 편지 한 장 띄워볼 일이다.
<박희정 인턴기자> graciahj@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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