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있었던 민주노총과 화물연대의 조합원들이 벌렸던 집회의 사진이 신문에 실려있는 것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것은 집회에 나온 사람들이 들고 있던 죽창 때문이었다. 내가 죽창을 처음 본 것은 8살이던 어린시절이었으나, 결코 잊을 수가 없는 기억이 되어 아직도 나의 머리 속에 남아있다.
그것은 한강의 철교가 끊어지는 바람에 피란을 가지못하고 어쩔 수 없이 서울에 남아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였다. 공산당원들은 기세등등하였고, 3개월 동안 서울에서는 식량이 떨어져서 감자로 연명을 하기도 하였다거나, 공산당원들은 굶주리지않았을 뿐만이 아니라, 둘러서서 구경하는 아이들이 있거나 말거나 동네 한가운데에 끌고온 손수레에 가득하였던 쌀밥을 배급받을 수도 있었다거나, 한밤중에 문을 두드리고 집안의 남자들을 잡아가기도 하였다거나, 이러한 것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기억에 깊이 남아있는 것은 죽창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배운 것은 수많은 노래였다. 그리고 아버지와 오빠들은 숨어있거나, 밤을 타서 피란을 하였으므로 엄마들이 감자를 구하러 집을 비운사이에 아이들은 길에 앉아서 자하문 밖의 자두와 태능의 배를 팔기도 하였다. 중학생만 되어도 여성동맹에 가입을 하거나, 길에서 붙잡혀서 인민군에 강제로 들어가야만 하였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할 수만 있다면 모두 시골로 도망을 하였다. 그 시절에는 초등학교 아이들만이 거리에 가득하였다.
남아있던 여자들과 아이들도 허기지고 지쳐서 더이상 버티기도 힘이 들었던 어느 날, 서슬이 시퍼렇던 공산당원들이 죽창을 들고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멀쩡하였던 서울이 여기저기 불타오르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어디엔가 있었던 무수한 새 신발들, 그리고 전혀 사용되지 않았던 새 물건들을 길가에 쌓아놓고 그들이 불을 지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창고에서도 불이 났다. 그것은 아마도 보급창이었는지, 쌀도 있고 설탕도 있고 옷감도 있다고 하여서 굶주렸던 사람들이 악귀처럼 몰려들었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한여름 대낮에 서울의 전지역에서 벌어졌던 방화로 인하여 밤낮으로 타오르던 엄청난 화염과 죽창의 기억을 남겨두고 그들이 떠나간 후, 서울에는 혼란과 참혹함만이 남아있었다. 죽창을 든 공산당원들이 봇짐을 지고 미아리쪽으로, 북으로 무리를 지어 떠나가 버린 다음, 탱크를 앞세운 유엔군들이 구세주처럼 나타났다. 그리고 우리들은 군인들의 C 레이션 상자속에서 나온 맛있는 것으로 허기를 채우기도 하였다.
다시 평화가 찾아오고 오랜 세월이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장대의 끝을 날카롭게 깎아만든 죽창에 대한 기억은 우리를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그것은 인민군들이 들고다니던 총, 둥근모양의 탄창에서 연속적으로 총알이 튀어나온다고 하여 ‘따발총’이라고 불리운 그 총보다도 더 살벌하고 무시무시 하였다. 아마도 그 이유는 사람이 실제로 죽창에 찔렀을 때를 상상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죽창으로 사람을 단번에 죽이기는 아마도 힘들것이다. 무장한 군인을 찌르려는 것이 아니라, 맨손으로 힘도없는 시민들을 찌르겠다고 작정을 한 그 잔인함은 서러운 전쟁의 산물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지금같은 평화의 시절에 죽창을 들고 거리에 나오다니 이것이 도대체 어인 일인가. 아마도 그것은 경찰들을 찌르기 위해서 준비된 죽창인 듯 하였다. 그 시절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새로운 세대가 죽창을 들고있는 의미는 무엇인가. 화염병과 죽창은 기억하고 싶지않은 어떤 상징과도 같이 나의 마음을 어둡게 만든다. 불행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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