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에게 숫자 3은 참으로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뭐든지 3이랑 연관을 많이 짓는다. 만세 3창, 초가삼간, 삼척동자가 그렇고, 옛날 어느 마을엔 삼형제가 살고 있었고, 길을 잃고 산속에서 헤메이다가도 3일 만에 집으로 돌아오고, 과거 보러 한양에 갔다가도 3년 만에 장원을 하며, 그리운 엄마 찾아 서도 3만리,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것은 빼 놓을 수 없는 예이기도 하다. 가위바위보도 삼세번, 한 여름 밤 들려주는 무서운 이야기도 꼭 3가지는 들어야 했고, 그이가 혹은 내가 3년 쫓아 다니며 연애하다 결혼했어요 라는 고백도 흔히 듣기도 한다. 결혼하고 3년이 되면 누구라도 그럭저럭 밥짓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갓 결혼 후, 세 동서가 함께 시댁에서 잠깐 살아 본적이 있다. 대가족들이었다. 나는 막내였기에 따라 하기만 해도 좋았으며, 저녁 설거지와 뒷정리 후 다음날 아침밥 지을 쌀을 씻어 준비하는 것을 보고, 내 차례가 되면 윗분들 따라 그렇게 하였다. 일찍 출근하는 분들을 위해 새벽기도 후 밥을 바로 하기 위한 것이었고 작은 일에도 준비성이 투철한 맏동서였던 것 같다. 때때로 예기치 못했던 외로움이 몰려올 때 그때를 생각해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며 그 시절이 참 그립기도 하다.
그러나 내 집에서는 다음날 아침을 위해 쌀을 씻어놓아 본적은 한번도 없다. 그날 아침에 쌀과 콩, 보리와 현미를 두어번 흐르는 물에 씻고 국이나 찌게물로 쌀뜸물을 받아 놓은 후, 필요한 시간에 착하고 밥 잘하는 압력솥에 씻어놓은 것들을 앉힌다. 한동안은 아주 작은 돌솥을 마련하여 천천히 밥을 지어보기도 했다. 가끔은 맛나게 밥을 지어 누룽지까지 만들어, 하나, 둘 모아 비상양식으로 아이들 사는 곳에 보내기도 하였다. 때마다 새 밥을 짓기에 시간은 드는 것 같으나, 보너스로 좋아하는 누룽지까지 얻게 되니 소박하고 착한 밥상으로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부엌, 누구에게나 눈에 잘 띄는 곳에는 검은 콩이 가득 담긴 유리 항아리가 있다. 지금은 98세가 되신 외할머니께서 오래 전에 검은콩을 주시면서, “콩알 하나 하나에 하늘과 땅과 사람이 들어 있단다.” 그럴듯한 의미 있는 말씀이 늘 귀에 맴돌아 잊지 않고 있다.
그 콩이 내 집 식탁에 오기까지 생명력 있는 연결의 시간이였다. 농부가 씨 뿌린 후에 모종하고, 물과 햇볕과 바람, 플러스 많은 정성, 그리고 거두기까지 수많은 손길이 갔을 테고, 또 친정 엄마와 올케가 좋은 콩 파는 곳을 찾아내어 구입하여 꼼꼼히 내 짐에 넣어 주어, 머나먼 타국에 와서 누구의 집도 아닌 우리 집에 온 귀한 콩들이다.
“하니, 이 검은콩들은 그저 그런 콩이 아니라오!” 하면, 이에 맞추어 그도 얼른 맞장구 쳐준다. 생각하게 하고 감사하게 하는 대단하고 훌륭한 콩이다. 밥을 지을 때마다 그 콩을 주신 엄마 사랑을 되새김 하게 하며, 하늘과 단비와 땅 그리고 농부들의 거친 손등에 입을 맞추고 싶게 하니 말이다.
수많은 가정과 식탁이 있건만, 내 집 식탁에 오기까지의 그 긴 여정을 검은콩들이 알기나 하듯, 유리병 속에서 꺼내올 때, 어쩌다 한두 알 놓쳐 버리면 또르르 소리를 내며, “나를 찾아주셔요 주인님!” 라고 이야기 하는 것 만 같다.
”검정콩아, 네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그래, 하늘과 땅과 사람의 힘을 안고 왔지.”
검은 콩은 하늘과 땅과 사람을 살리려 온 것 맞다. 오늘도 가볍게 한 주먹 검은콩을 넣고 따순 밥을 짓는다. “고맙다 검은콩아 ........!”
어느 새 아침 해가 높이 솟아 오늘 하루를 “어서 시작해요!” 하며 내 손을 잡아 준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