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내가 접한 대부분의 미국 문학이나 미디어에 비친 한국계 미국인의 모습은 거의 대부분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비도덕적이고, 비인간적이며, 비상식적인 것들이었고, 대부분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코카시안들 처럼 한국인을 묘사해놓은, 말하자면, 능력있는 사업가, 또는 평범한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묘사해 놓은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분위기 가운데, 케이트 제이콥스(Kate Jacobs)라는 작가가 『컴포트 푸드』(Comfort Food )라는 작품에서 이러한 틀을 깨는 한국계 청년의 모습을 그리고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이 청년은 주인공인 요리사 거스(Gus)의 둘째 딸 사브리나(Sabrina)의 남자친구로, 이름은 트로이(Troy) 박이다. 그는 한국에서 다섯 살 때 부모님을 따라 오레곤으로 이민온 1.5세대이며, 지금은 뉴요커이다. 그의 부모님은 오레곤에서 커다란 농장을 하시고, 트로이는 칩 대신 신선한 과일을 제공하는 자판기를 각급 학교에 공급하는 회사의 CEO이다. 그는 부모님이 하시는 농장에서 과일을 가져다가 신선하게 공급하면서, 거스의 요리 채널에 보조자로 출연해 자신의 회사 홍보도 하는 유능한 청년이다.

시간이 날 때면 그는 오레곤으로 가 부모님을 돕고, 자기가 이룬 회사를 키워 나가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기울인다. 대학때는 풋볼 선수로 활약했고, 선수와 경기를 해도 막상막하일 정도의 테니스 실력도 갖췄으며, 넓은 어깨와 훤칠한 외모,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과도 잘 융합하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는 사브리나에게도 더 없이 충실한 남자친구였는데, 남성 편력이 심한 사브리나는 트로이에게 이별을 통고하고 다른 남자와 약혼을 하지만, 트로이와 헤어지고 나서도 그가 자신에게 했던 행동들이나 말들, 그리고 그가 다른 남자들과는 달리 자신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던 사람인지 잊지 못한다. 그는 사랑을 나눌 때에도 먼저 사브리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묻고 배려하는 사람이었다.

또한 거스 역시 자신의 딸에게 지금 사귀고 있는 백인 남자 친구 빌(Bill)보다 트로이가 훨씬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사브리나를 설득한다. 사브리나는 빌과 결혼식을 강행하지만, 트로이를 떠올리며 괴로워하다 결국 당일 날 결혼식을 취소한다.

하지만 트로이는 자신이 물러서야 할 때 물러설 줄 아는 사람이다. 도중에 사브리나와 격한 감정에 휩싸이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그는 곧 이성을 찾으며 차분하게 사브리나의 옷매무시를 고쳐주고 그 자리를 떠난다. 그리고 사브리나의 약혼자를 만나 사브리나는 훌륭한 여자라며 결혼을 축하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인다.

영미문학을 연구한 사람으로서, 내가 읽은 많은 작품들 중에 한국계 청년을 이렇게 바람직한 인물로 묘사해 놓은 작품은 아마 이게 처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겐 이 작품이 중요한 의미로 다가왔다. 또한, 미국 주류 작가의 작품 속에 이렇게 바람직하게 발전된 한국계 청년의 모습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그 모습에서 한국계 청년의 높아진 위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으며, 이후 좀 더 많은 또 다른 ‘트로이 박’이 등장하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