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종차별주의자다.
한달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미국에서 성장하면서 나름대로 진보성향을 갖고 인종차별을 최악의 사회악으로 여겨온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이 내집마련에 좋은 시기라는 생각에 최근 집을 보러 다니면서 절감하는 현실이다. 집보다 우선적으로 보게 되는 것이 이웃의 인종이었다. 마음에 들었던 콘도도 눈에 띈 이웃이 둘 다 흑인인 것을 보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값싼 지역을 찾다보니 백인들이 눈에 띄면 순금을 찾은 기분이다.
아무리 계몽된 백인들도 아시안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 인사하면서도 마음속으로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다 -“머지않아 이사해야 되겠구나”. 재산과 자녀의 안녕이 걸린 문제인 만큼 부동산은 우리 모두로 하여금 인종차별주의자가 되게 한다.
미국 사회는 1865년 노예제도가 폐지된 이후 올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기까지 정치적으로 먼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시내 거리, 학교 교실, 교회 예배당 등을 보면 인종적으로 분리된 사회로서는 그리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비록 옛날처럼 시에서 이주를 금지하지는 못하지만 지금도 보이지 않는 분리의 벽은 프리웨이를 따라, 혹은 블록 너머로 견고하게 서 있다. 흑인들이 남부의 핍박을 피해 도시로 이주하면서 고립된 흑인 거주지역이 형성됐고 1950년대 들어서는 백인들이 아예 도시를 내버리고 교외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백인들의 탈출’(white flight)은 지금도 계속돼 이제 벤추라 카운티에서 또 어디로 소수계를 피해갈지 궁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반세기의 인권운동아래 인종차별이 죄악이라는 의식이 대부분의 백인들 사이에 뿌리내린 것도 사실이다. 다만 한인사회에서는 지금도 노골적인 인종차별이 지속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인들 사이에서 말했다면 단연 사회매장감인 발언이 한인사회에서는 서슴없이 내뱉어질 때가 얼마나 많은가. 아직 인종초월의 이상을 비록 행동에 옮기지는 못하더라도 이제 의식이라도 바로 잡아야 할 시대가 아닌가 싶다.
버락 오바마가 미국 최초의 소수계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거의 5개월이 되는 지금 앞으로 어떤 대통령으로 평가될 지 아직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오바마의 취임이 미국 사회의 전환기로 기억될 것이라는 점이다. 영국 식민지에서 시작된 미국이 진정한 다인종 사회가 되는 시대, 곧 포스트 오바마 시대의 신호탄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 때는 히스패닉 대법관이 아니라 히스패닉 대통령, 아니 아시안계 대통령도 탄생했을 것이고 어쩌면 타인종을 피해 도망 다닌 우리의 모습이 60년대 남부 백인들이 지금 기억되는 것처럼 못마땅하게 기억될지도 모른다.
그 포스트 오바마 시대가 분명 아직 오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수십년 후에 시작될 지, 아니면 더 일찍 올 수 있을지는 현 세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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