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에 남편과 한바탕 한 그녀는 아침까지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싸움의 원인은 그녀의 남편이 공부를 핑계로 아이들과 피크닉 가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던 그녀의 남편은 어느 날 느닷 없이 공부를 해야겠다며 유학 수속을 밟더니 식구들을 미국으로 데려왔다. 그녀는 그런 남편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시부모님도 아들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그리고 이렇게 재미 없는 미국 생할을 하게 되었다.
물론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땅부자로 유명한 그녀의 시댁에서는 매달 쓰고 남을 정도로 생활비를 보내 주셔서, 아이들 둘을 다 유치원과 학교 종일반에 보내고, 맘만 먹으면 명품백도 살 수 있었다. 그녀는 남편과 싸운 날이면 쇼핑을 하며 기분을 풀었다.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아울렛은 손바닥을 들여다 보듯 훤했다.
남편의 권유로 다녔던 어학원을 몇 달만에 그만둔 그녀는 아이들이 없는 평일 낮 시간 동안 주로 집에서 지냈다. 영어가 잘 안되니 쇼핑할 때 외에는 밖에 나가는 것도 사실 두려웠다. 집에서 요리, 홈 쇼핑 채널을 이리 저리 돌려 보다가, 그것도 싫증나면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 함께 수다 떨 사람을 찾았지만, 그들은 각자 어덜트 스쿨에, 여기 저기 아이들 라이드에,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서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럴 때면 그녀는 괜히 자기 혼자만 외롭게 떨어져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한없이 심란스러워져서 사람들이 미워졌고, 이런 상황을 만든 남편에게 더 화가 났다.
그러던 어느 날, 웃으면 눈이 반달 모양이 되어 사람들이 ‘반달 눈 언니’라고 부르는 남편 선배의 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천주교 신자인 그 언니는 만날 때마다 웃으며 가만히 그녀의 손을 잡아주곤 했다. 그 언니는 그녀에게 자기를 따라 어떤 모임에 가보지 않겠냐고 했다.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그저 가만히 다른 사람들이 하는 얘기나 듣고 있으면 된다고 해서 시간이나 떼우자는 마음으로 따라 나섰다.
그 모임의 참가자들은 다 같이 묵주기도를 하고, 성경말씀을 읽은 다음, 마음에 닿았던 구절이나 경험담 등을 나누었다. 그들은 외부인인 자신이 끼어 있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사는 동안 힘든 고비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솔직하게 나누었다. 그들 중엔 배우자의 바람 때문에 이혼 직전까지 간 부부, 마약에 찌든 아이 때문에 고생한 부모, 가게에 총을 든 강도가 들어 죽기 직전까지 간 아저씨도 있었다.
그들의 얘기를 듣다가 문득 그녀는 만약 자신에게 저런 일들이 닥친다면 자신은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과연 저들처럼 저렇게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 동안 어떤 노력을 하면서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내가 원치 않은 상황을 만든 남편만을 원망하며, 모든 걸 남편 탓으로만 돌리고 불평만 하면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낸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향해 혹시 나누고 싶은 얘기가 없느냐고 물었다. 그녀가 조용히 저는, 하는데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차올랐다. 결국 그녀는 한 마디도 못하고, 모임이 끝날 때까지 눈물을 흘리다 그 자리를 나와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 그 언니는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서럽게 울고 있는 그녀 곁에 가만히 앉아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음 번엔 홈리스들에게 급식 봉사를 하는데 같이 가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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