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의 ‘청영’(잠자리)이라는 시를 읽으며 그 뛰어난 시적 공간감각의 천재성에 감탄을 하곤 한다.
건드리면손끝에묻을듯이빨간鳳仙花
너울너울하마날아오를듯하얀鳳仙花
그리고어느틈엔가南으로고개를돌리는듯한一片丹心의 해바라기 --
이런꽃으로꾸며졌다는고호의무덤은참얼마나美로우리까.
山은맑은날바라보아도
늦은봄비에젖은듯보얗습니다
포푸라는마을의指標와도같이
실바람에도그뽑은듯헌출한키를
抛物線으로굽혀가면서眞空과같이마알간大氣속에서
원경을축소하고있습니다.
몸과나래도가벼운듯이잠자리가活動입니다
헌데그것은果然날고있는걸까요
恰似眞空속에서라도날을법한데,
或누가눈에보이지않는줄을이리저리당기는것이아니겠나요.
손끝에 닿는 빨간 봉선화가 건드려지는 섬세한 공간의 떨림. 하얀 봉선화의 날아오르는 공간. 너울 너울이라는 시어의 공간. 남으로 고개를 돌리는 듯한 해바라기의 시간적 공간. 순간 저 멀리로 시선이 가게 하는 산.
포플라의 훤칠한 키가 뽑은 듯 포물선으로 굽혀가며 원경을 축소한다는 구절의 더욱 멀어졌다가 순간적으로 가까워지는 거리와 속도의 공간. 잠자리가 나는 가벼운 공간의 자유로움. 이리저리 누군가가 줄을 당길 지도 모른다는 시귀의 높고 너른 신적 공간.
잠자리를 바라보는 시인의 공간 감각이 너무나 아름다워 공간 설명을 하는 것조차 한편의 시의 절대 공간에 누를 끼치는 듯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대기는 투명하고 밝고 맑고 무한하다. 사물과 풍경을 바라볼 때에 그 사물과 풍경을 담고 있는 공간을 바라보기를 즐겨한다. 그림을 볼 때에도 무엇을 그렸는가 보다는 화가의 공간 감각이 어떠한가를 바라보는 게 기쁘다. 어떤 그림은 손바닥만 한데도 무한한 공간을 담고 있고 어떤 그림은 벽을 다 채웠어도 숨이 막힌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어제의 나를 비움으로써 오늘의 삶의 공간을 새로이 허용하는 것이고 매일 새로 태어난 듯 새로운 하루를 맞는 것이다.
꼭 막힌 사람, 답답한 사람이란 고정관념으로 내적 공간이 비좁은 사람을 의미하고 툭 트인 사람은 열린 마음으로 자유로이 삶의 공간을 창조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화가의 내적 공간감각을 감지하는 것이고 음악을 듣는 것도 공간을 울리는 소리의 감각이 전개되어 가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사이버 공간은 무한한 공간감각의 혁명이다.
마음의 창문을 확 열어버리면 더 큰 공간을 살아갈 수 있겠지만 열어야 할 마음의 창문조차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있는 그대로 삼라만상이 다 하나의 열린 공간이다.
세잔느의 대욕도<사진>는 한 화가의 일생을 건 공간의 모색이 드러나는 아름다운 그림이다. 붓이 닿지 않은 비어있는 공간이 만년의 화가의 더욱 깊고 열린 공간감각을 보여준다.
세잔느는 새로운 공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공간을 깨어난 시선으로 바라본 대가이다.
박혜숙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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