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가까이 밤거리를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응급차가 지나간다. 어쩌면 한 생명이 막을 내리려는 신호인지 모른다.
죽음에는 나이 순서가 없다지만 내가 아끼는 사람이나, 가까운 친지가 내 앞서 세상을 등지고 먼저 떠나는 비보에 접했을 때는 가슴이 아프다.
작년 10월에는 내가 한국을 떠나 온 이후, 내가 하던 아동극 극본 분야의 빈자리를 이어 받아 힘써 오던 아동극작가협회 고성주 회장이 갔고, 지난 4월에는 내가 연출한 연극에 처음 출연한게 계기가 되어 한국에서 손꼽히는 연기파 탈렌트로 이름을 떨쳤던 여운계가 또한 나를 앞서 저 세상으로 떠나가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여운계의 사망 비보나 장례소식이 비중있게 다루어져서야 했었는데,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한 추모와 장례물결로 묻히고 만게 안타까울 뿐이다.
여운계! 그와 나와의 만남이 다소 극적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내 머릿속에 짙게 남아있다. 그와 나와의 첫 만남은 1960년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그 해 고려대학 연극제에 내가 번역한 성화를 내가 연출을 맡았을 때, 연기자 선정 오디션(audition)에 국문과 학생이었던 그가 참여 한 바 있었다. 그는 그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며칠 후, 역시 고대 영문과에 재학중이던, 그와 S언니 인연을 맺을 만큼 가깝게 지내던 내 여동생 정은이가 나에게 여운계 동생을 다시 한번 테스트 해 봐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를 따로 불러 다시 연기 테스트를 해 보았다. 그런데 1차 때와는 완전히 다른 연기 소질을 발견한 나는 그를 출연진 대열에 끼어 주기로 했다.
세계 1차대전에서 상의 용사가 되어 돌아온 환자를 간호하는 과정에서 환자와 간호사 사이에 싹트기 시작한 사랑의 과정을 그린 내용의 연극인 이 작품에서 주역인 간호사 역을 맡게 된 여운계의 뛰어난 연기력에 힘 입어, 이 연극은 크게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 받았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2007년 봄. 나는 그를 MBC 방송국 로비에서 맞났다. 그리고 우리는 내 자선전이 출간되는 그 해 늦가을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게 그와 나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리고 내가 미국으로 돌아온 얼만 후, 신문보도를 통하여 그가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을 때, 괜찮아요. 선생님!이라고 말 한게 내가 그에게서 들은 마지막 음성이었다.
한 사람의 죽음이 또 한 사람의 죽음의 그늘에 묻히고 만듯한 여운계의 죽음과, 그와 내가 나란히 찍은 사진이 내 자서전 화보에 실린 책장을 넘겨보지도 못하고 가고만 그의 아쉬운 죽음 앞에, 인생의 덧없음 다시 한번 절감케 한다.
구급차의 얼신연 스러운 사이렌 소리가 멀어져 가자, 정적(고요함)은 다시 밤의 장막에 드리워 진다. 나는 뒷뜰로 나와 밤 하늘에 반짝이는 묻 별들을 바라본다. 사람은 죽으면 별이 된다는 어릴적에 들어 왔던 동화세계로 몸을 담구어 본다.
그렇다면 여운계는 저 하늘 안방극장에서 어떤 별이 되어 반짝이고 있을까? 이렇게 상상해 보면서 저 별들 네 별, 저 별은 내별! 이란 어릴 적에 뇌이든 별 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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