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년을 맞아 UC 어바인 동아시아 문학과에서 방문학자로 지내면서 내가 목표로 삼는 일 중에 하나는 미주 한인 디아스포라 문인들과의 만남이다. 그들의 내면과 고뇌, 무의식을 이해하는 과정은 한국문학의 새로운 가능성과 만나는 기회이기도 할 것이다.
내게 그것은 미국의 장대하고 드넓은 자연과 매혹적인 현대 도시를 둘러보는 것보다 월등 소중하고 절박한 일이다.
몇몇 모임과 자연스러운 기회를 통해 송호찬, 정찬열, 최정자 시인, 연규호, 이정화 소설가 등 이곳 문인들을 만나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각자의 문학관은 다양했지만, 모두가 한국어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어로 발표된 양서에 대한 거의 생래적인 갈증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일치했다.
미주 문인들의 시집, 산문집, 소설을 읽으면서 새삼 한국어의 아름다움과 운명에 대해 생각해본다. 언어에 대한 자의식은 참으로 미묘해서,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오히려 한국어와 한국문학에 대한 감각이 한층 민감해지고 섬세해지는 것을 몸소 느끼는 중이다.
생각해보면 한국을 떠난 지 수년에서 수십 년에 이르는 디아스포라 문인들에게 한국어에 대한 감성이 더욱 예민하고 각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미국에 이민 온지 2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 얼굴들, 생생하게 떠오르는 풍경들이 있습니다. 그 그리운 것들은 이름표를 달고 떠오릅니다. 아름다운 나의 모국어입니다”(정찬열 산문집, ‘LA에서 부르는 고향노래’)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이리라.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있는 상태일수록 역설적인 의미에서 자신에 대한 근원적 되돌아봄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조국을 떠난 디아스포라 문인들이야말로 한국어와 한국문화, 한국문학에 대한 남다른 자의식을 지닌 존재에 다름 아닐 것이다. 한국을 떠나야 한국어의 아름다움이 더욱 투명하고 절박하게 보이지 않을까.
그들의 문학적 순정, 한국어에 대한 그리움과 만나면서 한국어와 한국문학의 존재를 너무나 당연시하는 내 자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들로 인해 나는 무엇보다도 한국어와 한국문학의 아름다움을 위해 앞으로의 생을 헌신해야겠다는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한인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오겠지만, 설사 경제적으로 풍족한 환경과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이민 그 자체는 내면화된 상처나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과 마주치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디아스포라 문학의 찬란한 가능성이 존재한다. 늘 뛰어난 문학은 세상에서 상처받거나 좌절한 영혼의 필사의 기록이었다.
세계문학사에 명멸한 수많은 디아스포라와 망명가들의 존재를 생각해 본다. 백석, 프란츠 카프카, 발터 베냐민, 에드워드 사이드…… 그들에게 익숙한 조국을 떠나 낯선 곳에서의 생활은 자신을 준열하게 성찰하는 과정이기도 했으며, 자신의 상처와 곡진하게 만나는 도정이기도 했다.
미국에 거주하는 많은 한인 디아스포라 문인들의 문학에 대한 순정한 열정이 상처받은 사람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문학적 품격’으로 거듭날 때, 한국문학은 지금보다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다.
권성우 /문학평론가 숙명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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