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 (수필가)
일본작가 나카타니 아끼히로가 쓴 연령대 별로 하지 않으면 안 될 50가지 시리즈가 있었다. 10대는 ‘토론과 연설을 즐겨라’ ‘ 평생 잊지 못할 자랑거리를 만들라’고 충고했다. 그 중에서도 ‘부모 품을 떠나라’가 으뜸이었다.
큰 아이도 10대에 집을 떠났었다. 10여 년 동안 동부에서 공부하며 일년에 한 두 번 겨우 집에 올까말까 했다. 특히 생일 때면 굶지나 않는지 아내는 눈물을 찔끔이며 안타까워했다. 다행히 학업을 마치고 가까이 살게 됐다. 객지살이 10년만에 녀석도 철이 들어 가족이 함께 사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느끼게 됐다고 말한다. 말만이라도 고맙다.
작은 아들은 아예 나갈 염도 않고 살았다. 어릴 때부터 TV나 게임 놀기 밖에 별 취미가 없던 터였다. 내가 낡은 밴으로 방과 후 픽업을 가면 질색을 했다. 할 수 없이 몇 블록 아래 차를 대면 남이 볼세라 후딱 올라타곤 했었다. 공부보다 친구들에 더 신경 썼던 평범한 틴에이저였다. 녀석은 미래에도 별 관심 없는 10대 캥거루 족이었다.
아끼히로는 20대에 ‘궁지에 몰릴 때까지 견뎌라’ ‘좋아하는 한 가지 일을 찾아라’, ‘정열로 상대방을 감동시켜라’. ‘현장에서 실패하는 경험을 맛 보라’고 일렀다.
작은 녀석은 대학을 졸업하고 조금씩 실패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겨우 들어간 임시 직장에서 지독한 보스를 만났다. 암만 일을 해도 비판만 하는 스크루지 같은 상관이었다. 동료들이 몇 달 못 견디고 떠나는 데 녀석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온갖 수모를 감수하고 이삼년을 버텼다.
전화위복이랄까. 새로 옮긴 직장에서 제가 좋아하는 일을 찾은 듯 했다. 일 배우는 게 좋아 꼭두새벽에 출근해 제일 늦게 퇴근하는 적극성을 갖게 됐다. 예전 고생만 실컷 하던 직장에 비하면 지금은 일이 고돼도 능력을 인정받으니 신나서 일에 매달린 다는 게다. 입사 이년만에 올해의 직원이 됐고 승진했다. 소극적이고 유약하기만 하던 녀석이 고생을 통해 여물어가니 참 고마운 일이다.
아끼히로는 40, 50대에게는 ‘과감하게 버려라’, ‘다른 사람을 위해 살라’ ‘느리게 살라’고 권한다.
난 사실 이 나이 되도록 버리지 못하고 살아왔다. 결혼 때 입었던 옷가지며 한국서 갖고 온 책들까지 옷장과 차고에 차고 넘친다. 아내는 안 입는 옷가지를 매년 구호단체로 보내는데 난 그게 안 된다. 버릴라치면 셔츠 한 장에도 녹아있는 추억이 보이고, 낡은 책에서 손때묻은 옛정을 지울 수 없다. 게다가 아이들 키우면서 사들인 이층 침대며, 장난감, 구식 컴퓨터들이 한 트럭 감인데도 못 버린다. 내 이민 평생이 고스란히 보여 못 버린다.
얼마전 작은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날 선물로 두 아들이 함께 새 컴퓨터를 준비하겠다고 한다. 기특한 마음에 아예 생일 선물과 합쳐서 하면 받겠다고 했더니 알았다고 웃는다.
좀 뜸을 들이더니 새 컴퓨터를 놓은 대신 집에 낡은 물건들을 정리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한다. 5년 동안 한번도 입지 않은 옷이나 보지 않은 책들, 쓰지 않은 것들은 정리하잔다. 난 별 생각 없이 동의했다. 그 주말, 집 앞에 대형 덤프 트럭이 도착했다. 그리고 두 아들들은 동의한 원칙대로 모든 잡동사니들을 5년 기준 재생할 것과 버릴 것으로 구분해 놓았다.
나는 기준이 야박하니 10년으로 하자고 우기면서 잡동사니들을 부여잡았다. 허나 아이들은 단호하다. 아빠, 로켓도 일 단계를 버려야 우주를 날아요. 이번 생신은 이 단계 인생의 시작이에요. 하며 성큼성큼 버리기 시작한다. 아내도 신이 나서 한 마디 거든다. 이건 자식들이 당신에게 준 최고의 생일선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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