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대가리’ 연어
한국 대중가요는 태반이 사랑가 아니면 고향타령이다. 사랑은 그렇다 쳐도 손바닥만한 땅에 ‘그리워도 못 가는 고향’이 왜 그리 많은지 모를 일이다. 가요만이 아니다.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라는 동요부터 ‘해는 저서 어두운데…’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등 가곡까지 수구초심을 읊은 노래가 부지기수다.
미국인들도 마찬가지다. 60년대 한국에서도 유행했던 ‘마이 홈타운’(폴 앤카), ‘고향의 푸른 잔디’(톰 존스), ‘그리운 시골 고향 길’(존 덴버) 같은 팝송이나, ‘켄터키 옛집’ 같은 포스터의 포크송,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등 흑인영가도 그렇다. 체코의 안토닌 드보르작이 미국에 여행 와서 작곡한 ‘신세계’는 불후의 망향 교향곡으로 꼽힌다.
그러나 수구초심에 관한한 인간을 야코죽이는 동물이 있다. 개도, 고양이도, 여우도 아닌 연어다. 아마 요즘 퓨짓 사운드 물속에는 “산천 경계 좋고 바람 시원한 곳 희망의 나라로…”라는 연어들의 웅장한 망향가 합창이 울려 퍼질 법하다. 자기가 태어났던 강으로, 개천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수만 마리가 바다에서 몰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수 백리 떨어진 타향에 팔려간 후 주인집으로 돌아온 명견 ‘래시’의 천신만고 여정을 그린 디즈니영화가 있고, 장난삼아 트럭에 들어갔다가 타주까지 실려 간 후 걸어서 주인집을 찾아왔다는 고양이 얘기도 신문에 보도됐었다. 시애틀 비둘기는 한국에 갖다 놔도 태평양 건너 돌아온다는 우수개도 있다. 그래도 이들은 연어에 족탈불급이다.
연어의 귀소능력은 불가사의이다. 하천 상류에서 부화된 새끼 연어들은 1~3년간 민물에서 자라며 대략 90%가 죽거나 다른 동물에 잡아먹힌다. 이 과정에서 짠물 체질로 바뀐 연어는 망망대해에 나가 약 5년간 살며 성어가 된다. 그 후 다시 민물체질로 바뀌어 자기가 출생한 강에 찾아와 정확한 ‘번짓수’에다 스스로 알을 낳고 장렬하게 죽는다.
연어가 태양의 위치를 보고 방향을 잡는다거나, 지구의 자력이나 해류의 수온을 근거로 길을 찾는다는 설이 있지만 설일 뿐이다. 어떤 학자는 연어의 후각이 개보다 수백배나 발달돼 자기가 태어난 하천이 지닌 독특한 냄새를 따라 찾아간다고 주장한다. 귀소능력이야 어떻든 간에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는 그 귀소본능 자체가 더 이해할 수 없다.
연어는 수만년전 지구를 뒤덮은 빙하도 견뎌내고 살아남은 생명력이 강한 어류이다. 언젠가 TV에서 알래스카 낚시꾼들이 해안으로 몰려오는 연어를 그물로 떠서 바위에 내려놓고 야구배트로 머리를 갈겨 죽이는 장면을 봤다. 방망이로 수차례 때려야 죽는 그 돌대가리 속에 GPS보다 더 정확한 위치추적 세포가 들어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
연어에겐 고향이 생명과 바꿀 만큼 소중한 존재이다. 한국 사람들의 고향의식도 연어 못지않게 강하다. 그 많은 고향타령이 이를 반증한다. 서북미지역의 1세한인들 중에도 고향을 못 잊어 연어처럼 태평양 건너 한국으로 되돌아가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한국은 워싱턴주보다 작지만 지역마다 사투리가 있고, 고유음식이 있고, 독특한 생활문화가 있다. 다른 나라에선 보기 드문 이 소중한 민족자산이 1960년대부터 부정적 의미의 ‘지역감정’으로 둔갑됐다. 소위 영·호남 간의 갈등과 대립이 사회전반에 뿌리를 내렸다.
지역감정의 최대 피해자이면서도 그 덕을 단단히 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그의 상대역인 박정희 대통령은 30년 전에 서거했다. 둘의 퇴장을 계기로 대립과 갈등의 지역감정이 순의미의 지역정서로 회복돼 아름다운 고향노래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윤여춘(편집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