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새끼를 낳은 후 미역을 뜯어먹는 걸 고려사람들이 보았다. 그후 산모들이 산후조리를 위해 미역을 먹기 시작했다는 글이 당나라 초학기에 나온다. 부산 피난 시절, 어머니는 싱싱한 미역으로 맛깔스런 찬을 자주 만드셨다. 그 중에서도 여름이면 오이와 버무린 시원하고 새큼한 미역냉채가 일품이었다.
30여 년 전, 미네소타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첫아들을 순산한 아내에게 미역국을 끓여주질 못했다. 동양식품이 없던 탓이었다. 얼마 후, 장모님께서 보내신 마른 미역으로 국을 끓이며 새댁아내는 향수병에 울먹였다. 미역은 우리들의 고향음식이요, 보약이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미역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혐오스런 생태계 침입종 100가지에 올라있다. 동양의 보배가 서양에서 쓰레기 취급을 당하는 격이다. 미국 유수 생태연구소마다 미역이 미 서해안과 뉴질랜드, 유럽 지중해, 심지어 남미 아르헨티나까지 급속히 번지고 있음에 비상벨을 올리고 있다. 미역이 끼치는 폐해에 대해 다투어 경고하고 있다.
8월 2일자 뉴욕타임즈는 스미소니언 환경연구소 자빈 박사의 르포기사를 소상히 실었다. 지난 봄, 그녀는 샌프란시스코 만의 생태 조사를 하다가 깜짝 놀라고 만다. 배 밑창과 부두기둥에서 줄줄이 올라오는 미역줄기를 140파운드나 건져낸 것이다. 드디어 올게 오고야 말았다. 이 발견이 착오였으면.. 하고 근심 띤 표정으로 일갈하는 그녀의 사진이 크게 실렸다.
미역은 동해가 원산지다. 미역엔 체내 지방을 녹이는 푸코산신 성분과 요오드, 칼슘이 풍부하고, 피를 맑게 해 피부미용과 산후조리에 좋은 건강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맛도 좋아 미역 - 와까메가 들어간 담백한 미소 국은 세계 곳곳 일식 집들에서 오늘도 인기다.
그런데 왜 미역이 이렇게 혐오 침입종이 되었을까? 우선 번식력이 강해 미국 서해안 토종인 켈프(Kelp)라는 해초를 삼킬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다시마 류인 켈프는 바다 속에 큰 숲을 이루며 온갖 물고기들과 생물들의 서식처가 된다. 또 성게나 전복들의 양식이기도 하다. 헌데 더 심각한 문제는 부두와 배 밑창, 굴 양식장 등을 순식간에 덮어버리는 데 있다. 미역을 먹지 않는 미국에선 미역의 확산이 시간문제란 게다.
미역의 침입이 미국에 끼칠 피해액을 년간 무려 90억 달러로 보고 있다. 토종 해산물들의 씨를 말리고, 해양 환경을 해치는 피해액을 돈으로 계산한 것이다. 올 한국 예산의 근 1/30에 달한다. 샌프란시스코 만에는 벌써 아시아 산 조막조개나 털게, 등 약 200여종의 침입 종들이 공격적으로 번식하고 있다. 그 위에 미역까지 퍼지면 거의 치명적이란 게다.
헌데 어떻게 미역이나 생태계 침입 종들이 세계곳곳으로 뻗어가게 됐을까? 대형선박이 주원인으로 밝혀지고 있다. 큰배들은 균형을 잡기 위해 배 밑창에 밸래스트(ballast)라고 부르는 바닥 물을 엄청난 양으로 채우는데 그 속에 묻어 들어온다. 세계 각지에서 샌프란시스코 만으로 들어오는 화물선 수가 매년 3천 척이 넘는다. 이 배들을 따라 침입종이 매 14주마다 하나씩 늘어간다는 통계다.
오늘도 샌프란시스코 만엔 수십 척 화물선들이 그림처럼 떠있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선 토종과 침입종 들간에 치열한 생태전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나는 과연 미역 편인가, 켈프 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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