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掌篇1>
언제부턴가
내 가슴에 한 여인이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누군지 나는 모른다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있을 것도 같고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없을 것도 같은
그 여인
내 가슴 속에서 영
지워지지 않는 여인
그래서 산다는 것은
영원히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병우 시인- 70세에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었으며, 이 시는82세에 발간된 시집 ‘열자에 아홉자의 단칸방’에 수록되어 있다.
한 여인이 시인의 가슴속에 살고 있다. 이 시인의 가슴을 채우고 있는 ‘그 여인’은 아마도 모든 남자들이 가슴 한구석에 남몰래 간직하고 있는 기억속의 ‘애인’일 것이다. 그의 영원한 ‘애인’은 첫사랑의 여인이기도 하고,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한 짝사랑의 여인일 수도 있으며, 자기를 배반하고 떠나간 매정한 여인일런지도 모른다.
남자들은 삶의 현장에서 피곤하고 억울할 때마다 그 ‘환상의 여인’을 찾아간다. 험난한 생존경쟁의 치열한 싸움터에서 ‘그 여인’은 남자들에게는 포근한 ‘마음의 고향’이 된다. 황량한 생활의 틀에서 탈출이라도 하듯이, 그 상상의 여인과 사랑을 속삭이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하며, 아늑한 꿈길을 걷기도 하다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현실로 되돌아 와, 또다시 한 가정의 건실한 가장이 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삶이란 의무적으로 지워진 행위로 가득차 있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아무도 그것으로 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그 무형의 굴레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한 남자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여인. 오랜 세월을 두고 불현듯 그리워지는 ‘그 여인’은 어쩌면 실제의 인물이라고 착각이 되는 ‘환상속’의 여인 일런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아이를 키우면서 현실속에서 사랑을 깨닫는다. 때로는 남편보다도 아이들을 더욱 사랑하여서, 가정안에서 여자들의 사랑은 매일 매일의 생활속에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나 남자들의 사랑이란 종종 현실을 빗겨간다. 그러한 남자들이 믿고 있는 사랑이란 그래서 더욱 몽환적인 환상속으로 빠져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제까지 살아가던 삶의 연결고리를 훌훌 던져버리고 홀연히 다른 길로 가버린 남자들의 이야기가 있다. John Updike의 소설 ‘Rabbit Run’도 있고, 월남전이 끝난 후 미국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호주로 가서 소식도 없이 몇 십년을 살았던 어느 젊은 병사의 이야기도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현재 살고 있는 삶에서 단호한 탈출을 실제로 결행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면, 무엇인들 불가능 하겠는가.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어서, 마음속에 ‘그 여인’을 감추어 둘 필요가 없었던 서양의 옛 제왕과 귀족들은 여러 여신들에게 경배하였다. 그들에게 조차도 ‘마음의 고향’이 필요하였던 것일까. 어째서 남자들의 가슴속에는 자신도 모르는 ‘한 여인’이 살고 있는 것일까. 그 ‘마음의 고향’에 나도 한 번 가보고 싶어진다. 아이들을 모두 키워서 내 보낸 후, 사랑의 실체가 모두 떠나간 다음. 마침내 찾아가는 ‘환상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고 하여서 누가 여자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겨눌 것인가. ‘마음의 고향’란 어차피 ‘꿈’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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