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타계는 케네디 신화를 다시 한 번 실감케 하는 계기였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3년이 채 안된 짧은 임기동안 이룬 업적을 따지고 보면 훌륭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는 있어도 많은 미국인들의 열정적인 케네디 사랑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케네디가 쿠바 미사일 위기에 지혜롭게 대처하고 소수계 인권신장, 노후복지, 친이민정책, 우주탐험 등 ‘뉴프런티어’(New Frontier) 정책을 제시했지만 그의 비전을 현실화시킨 장본인은 사실 린든 존슨 대통령이었다. 존슨은 케네디 임기동안 의회에서 제동에 걸려 있던 공민권법, 투표권법, 이민개혁법 등을 속속히 통과시키고 케네디 때 부결됐던 메디케어 신설도 거침없이 밀어붙였다. 부통령이 되기 전 상원 원내총무를 지낸 존슨의 거친 정치수완이 아니었다면 과연 케네디의 이상적인 비전이 이뤄질 수 있었을까.
존슨은 이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가난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미국 사회의 안전망을 대폭 강화한 ‘위대한 사회’정책을 추진했다. 경제기회균등법을 통과시키고 주택도시개발국, 공공방송국 등을 신설하고 교육 예산을 대폭 증액했다.
그러나 존슨의 업적이 역사의 그늘 속으로 사라진 것은 베트남 전쟁 때문이었다. 존슨 행정부를 상징하는 사건은 소수계 차별을 금지한 공민권법이나 메디케어가 아니라 6만명의 미군이 전사하고 30만명이 부상당한 베트남전이 됐다.
반면 43세의 나이에 최연소 대통령으로 선출된 케네디는 미국인들에 새로운 시대를 상징했고 특히 그의 암살은 이루지 못한 가능성을 상징하게 됐다. 만약 케네디가 암살되지 않았다면...
많은 미국인들은 미국이 베트남전으로 분열되지 않은 사회, 아직 정치 폭력이 순수함을 앗아가진 않은 사회, 젊은 대통령 내외가 청춘과 이상을 불어넣은 사회를 상상한다. 더구나 베트남전 종전을 공약하며 형에 이어 대선에 나선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됐을 때에는 잃어버린 가능성을 슬퍼하는 아픔이 더욱 가중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성과 섹스어필, 고상한 연설로 국민을 고취시킬 수 있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케네디와 비교될 때가 많다. 케네디 당선이 미국인들에 종교적 편견을 떨친 자부심을 준 것처럼 오바마 당선은 인종 편견을 떨친 자부심을 주었고 새로운 시대의 가능성을 담고 있다.
그러나 오바마는 케네디와 달리 가능성이 아니라 실제 업적에 따라 평가될 것이다. 그리고 인권법과 메디케어가 케네디의 이상이 아니라 존슨의 정치로 실현된 것처럼 의료개혁도 연설이 아니라 오바마가 보수 민주당 의원들을 당근과 채찍으로 얼마나 잘 다루느냐에 달린 문제가 될 것이다.
오바마가 오늘의 케네디일 뿐 아니라 오늘의 존슨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다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한다면 말이다.
우정아 / 외신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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