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앞을 검푸른 테주강이 흐른다. 그 하구에 ‘신대륙 발견 탑’이 바다를 향해 막 돛을 편 범선처럼 떠 있다.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았던 바돌로뮤 디아스, 인도까지 이른 바스코 다가마 등, 탐험 영웅들의 이름이 낯설지 않다.
광장바닥엔 포르투갈이 개척한 세계지도가 새겨져있다. 10년 전, 마카오를 중국에 반환하기까지 장장 600년간 해 지지 않는 제국으로 군림한 포르투갈. 남한 크기에 천만 인구에 불과한 이 소국은 14세기 무렵 어떻게 대서양시대를 열었을까?
당시 포르투갈이 바다로 진출한 배경이 흥미롭습니다. 인솔자 C님의 설명이다. 13-14세기는 징기스칸의 몽고제국이 세계를 제패할 때였지요. 유럽과 아시아의 모든 육상교역을 장악했습니다. 그 때 통상로를 재빠르게 이용한 게 베니스 같은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이었지요. 13세기말에 벌써 마르코 폴로가 몽고족이 세운 연 나라에 다녀와 여행기를 쓸 정도였으니까요. 허나 몽고가 내분으로 갑자기 150년 남짓만에 망하고, 흑사병이 돌면서 육로통행이 위험하게 됐습니다. 1450년 전후, 강력한 오토만 터키가 팽창하면서 육로가 완전 차단됐지요.
그 때 포르투갈에 현군(賢君)이 나타났다. 해양왕으로 불린 엔리케 왕자다. 그는 왕위를 사양하고 오직 해양개척에 전념했다. 우선 북아프리카 이슬람 요새인 세우타를 점령, 대양개척의 거점을 확보했다. 그리고 과학적으로 항해사와 지도제작자들을 양성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빠르고, 실용적인 범선 -까락(carrack), 혹은 까라벨(caravel)을 만들어 대양개척에 투입했다. 돛이 2-3개, 이 삼십 미터 길이로 대양항해에도 안전하고 상륙에도 용이한 배들이었다. 1492년 콜럼버스의 산타마리아나 1497년 바스코 다가마의 배도 엘리케가 고안한 까락이었다.
엔리케 왕자는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하고, 인도와 중국까지 가 향신료와 비단을 사들였습니다. 일본에는 조총을 전수해 임진왜란 땐 왜국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지요. 1500년에는 자원의 보고, 브라질를 점령한 게 정점이었습니다. 당시 리스본은 세계에서 몰려오는 부로 황금기를 이루었지요.
우리 일행은 강변 벨렘탑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마누엘 양식의 상아빛 탑은 배 출입 감시소라고 한다. 벨렘은 베들레헴이란 뜻이다. 유적지마다 배어있는 당시 군주들의 신앙심을 보면서 의문을 떨쳐버릴 수 없다. 과연 독실한 기독교 군주들은 어떻게 악랄한 노예 식민주의를 합리화했을까?
C님의 설명이다. 흥미로운 건 엔리케 같은 성군도 원주민들을 노예화하면서 그들을 지옥에서 구원한다고 믿은 겁니다. 배 밑창에선 노예들이 신음하는 데 그 고통을 외면하고 정복자들은 갑판에서 찬송을 부르며 신의 가호를 찬양했지요.
연전에 본 유명한 영화 미션이 떠오른다. 남미 원주민들을 포교하는 선교사 가브리엘은 사랑의 화신이었다. 탐험자와 원주민들이 함께 사는 유토피아를 꿈꿨다. 허나 포르투갈 군주는 식민지화가 신의 섭리임을 믿고 있다. 이런 위선 앞에 선교사들은 원주민들을 도와 항쟁하다가 군대의 화력 앞에 몰살당하고 만다.
C님이 마무릴 짓는다. 17세기 들면서, 5 대주에 걸친 식민지를 관리하기엔 포르투갈로선 힘에 부칩니다. 인도는 영국에 뺏기고, 아프리카와 북남미 식민지는 프랑스와 화란이 넘보기 시작합니다. 포르투갈의 해양독점시대가 끝나고, 유럽 강국들이 식민지를 분할하는 제국주의시대가 도래한 것이지요..
여행은 역사 속으로 걸어 드는 것이란 말이 실감난다. 엔리케가 세운 수도원에 안치된 바스코 다 가마의 석관 앞에서 마음의 촛불하나를 밝힌다. 전인미답의 신항로를 개척한 그들의 불굴의 용기에 경의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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