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지 않은 샌프란시스코라 하지만 9월 중순을 넘어선 바람은 가을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맑은 햇살 사이로 약간은 선선한 바람이 살결에 닿을 때 마다 왠지 모를 그리움으로 마음이 가득 차는 것을 보면서, ‘아, 가을이구나!’ 합니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라고도 하고, 독서의 계절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저에게 있어서 가을은 좋은 계절입니다. 마음을 닦는 수행자에게 있어서 “좋은”이라는 수식어는 바로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가을의 맑고 높은 하늘, 청명한 바람은 나를 돌아보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지난 9월 19일에 정율 스님의 자비, 평화, 사랑의 음악회에 다녀왔습니다. 이 음악회는 한 마디로 “좋은 음악회”였습니다. 다시 한 번 “좋은”이라는 의미는 바로 음악을 통해서 나를 돌아보며 참회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는 의미입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 했던 800 여명의 관중들이 그러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물은 마음이 담긴 선물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은 바로 마음이 담긴 음악이 되겠지요. 정율 스님의 한 곡 한 곡에는 스님의 삶과 마음이 그리고 스님의 염원이 담겨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그리며 부르는 노래에서 모두가 눈물을 지일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는 얼굴도 이름도 자라온 환경도 다 다르지만 그 다름 속에서 어머니의 존재는 모두에게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한가한 오전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따듯한 햇살에, 시원한 가을바람이 살결에 닿을 때 문득, 추석 송편을 찔 때 와락 올라오는 김을 맞을 때, 내 마음을 아련하게 채우는 분은 바로 어머니입니다. 어머니의 품에서 차가운 바람은 절로 따듯해지고, 욕심으로 가득 찬 나의 마음은 조건이 없는 어머니의 마음에서 사르르 녹아나기 때문입니다.
정율 스님의 소리는 수행자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습니다. 맑고 맑은 소리로 일관하는 가운데, 수행자로서 한발 한발 내딛는 소리에서는 씩씩함이, 두 손을 모아 부처님 앞에서 기도하는 노래에서는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중생의 아픔을 이야기할 때에는 눈물짓게 되고, 나를 돌아보는 참회의 기도는 내 마음을 돌아보게 합니다. 스님의 소리는 거울 같아, 우리 모두의 모습을 비춰보게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음악회에 함께 자리한 800 여명의 청중들은 스님의 염원처럼 잠시나마 마음의 모든 짐을 살며시 내려놓고 함께 하나가 될 수 있었지요.
스님께서는 앙코르 곡으로 아베마리아를 부르셨습니다. 무반주에 성당 전체를 맑은 소리로 울리는 스님의 목소리. 아멘 하면서 간절히 모든 두 손에는 어느 누구도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로 부처님, 예수님이라는 우리 인간이 만들어 놓은 언어와 개념의 속박에서 진정으로 자유롭고, 진정으로 열린 하나님의 나라, 부처님의 나라로 우리 모두를 인도한 것입니다.
성당과 승려 복을 입은 스님. 천주교 성가대와 불교 성가대, 불교의 범패와 성당의 종소리.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너무도 잘 조화가 되면서 어울리는 것은 원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단지 우리의 생각에 지나지 아니하였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감상이 들었습니다.
어린 아이에게 꽃다발을 주면서 스님께 드리라고 하니, 아이는 꽃다발은 잊어버린 채 맨 손으로 다가가 스님을 꼭 안아드립니다. 어느 꽃 선물보다도 감동이 있는 선물이었지요. 이 가을, 아이처럼 잠시 모든 것을 놓고 저 청명한 하늘을 가득 안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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