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공원에서 있었던 한인 행사장에서 풀어놓은 개 한마리가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개가 한 할아버지 주위를 맴돌고 있을 때 할아버지는 그 개더러 “고 고 (Go, go!)”하시면서 “미국개들은 ‘가 가’하면 안듣고 꼭 ‘고 고’해야 들으니…”라고 말씀하셨다.
참 오래전의 이야기이다. 이 때엔 영어를 못해 힘들게 공장에 다니면서 생활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러다 한국의 경제력이 커지면서 미주 지사들이 생기게 되고, 주재원으로 온 한인들이 늘어나면서 한인 사회의 판도가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젊은 층으로 바뀌었다.
1970년대에 학교를 마치고 산 호세로 직장을 구해왔을 때만해도, 한인 기업들이 꽤 있었고 그곳엔 으례 한인 노동자들이 가득찼었다. 이들의 소원이 그런대로 영어를 자유롭게 해보는 것이었다. 첫 집을 새로 지은 집으로 장만해두고 아내는 학교 기숙사로 가버렸고, 혼자있으면서 뭔가 뜻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처음엔 서너분으로 시작했었는데, 공짜로 영어가르쳐 준다고 입소문이 퍼지는 바람에 매일 “한 사람 더 오고 싶다는데 괜찮으냐?”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저녁에 두 시간씩 이분들을 이년 간 가르쳤었다. 때때로 수강 신청서를 보면서 그 당시를 돌아본다. 총 72명이다. 거의 모두가 나보다 더 연로하신 분들이라, 제자의 장례식에서 다른 제자들을 만나기도한다.
수업료없이 2년을 계속했었는데, 모두들 열성이 대단해서 결석하는 사람이 없었다. 열심히 받아쓰고 열심히 따라서 발음했다. 이화 여전 나오신 한 분의 깨끗한 필체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숙제도 매일 잘 해오셨고 열심히 채점해서 평가해 드렸었다. 얼마나 열심히 참석하셨나하면, 그분들은 매일 녹음기를 지참하시고 조금이라도 잘 녹음하기위해 다른 녹음기들을 약간 밀치고 강사의 입 가까이로 두려고 했었다. 아내가 기숙사에서 안오는 주말이면 특강까지 했었다. 토요일에도 만원이었다. 요즘의 디지털 시대였으면 조그만 디지털 녹음기였겠지만, 그 때엔 큼지막한 카셋 녹음기가 붙은 라디오 (Boom Box)였었다.
그 중엔 재주는 있으나 영어를 못해 제대로 대우를 못받는 분들이 많으셨다. 첫날, 어느 한 분의 질문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것 얼마나 배우면 우리 아파트 앞에서 개 오줌 뉘는 사람더러 ‘야, 저리 데리고 가서 뉘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 질문을 받는 순간 나 자신도 어떻게 영어로 옮겨야 좋을까 생각이 나질 않았었다.
이 영어 못하시는 분들께 도움을 드리려고, 어느 한인 교회의 대학생부를 맡았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나서서 도우겠다는 학생이 없었다. 이때, 서부 활극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주연 배우가 악한과 한 바탕 총 겨루기를 위해 마을로 들어온다. 동네 사람들은 자신에게 총알이 날아올까봐 창문을 닫는다. 흥청거리던 동네가 갑자기 유령촌이 된 듯 조용하다. 남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엔 더욱 더 외롭게 느껴지는 게 나만의 착각일까?
한 번은 성경 공부 그룹을 인도한 적이 있었다. 그 중에 영어를 못하는 부부가 있었는데 그 아내는 저녁일을 하시는 분이었다. 어느 날 밤 두시에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내가 아직 집에 안돌아왔으니 좀 알아봐 달라고 했었다. 그러다 다시 전화가 왔는데 밖에 누가 와있으니 전화 좀 받아보라는데, 사망 소식을 전하러온 앰뷸런스 운전사 (paramedic)였다. 날이 새고, 그 부부들이 소속된 한인 교회로 전화했더니 목사님께서 토요일에는 오랫동안 준비해온 행사가 있어 장례식을 치를 수가 없다고 하셨다. 아! 가난한 자는 가난하게 죽어야하는가?
오늘날의 한인 교회에는 영어하는 지식층도 많으니,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창문을 닫는 교회가 없기를 바란다. 30년이 지난 지금, 제자들은 모두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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