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팅 팟(melting pot)이란 우리말로 도가니란 뜻이다.
도가니는 광물질 같은 것을 녹이는데 쓰는 흑연 따위로 만든 우묵한 그릇으로 그 속에 들어가면 딱딱한 쇠붙이도 녹게 마련이다.
그런데 미국사회는 다인종 사회로 여러 종족이 어우러져 살고 있기 때문에 이를 흔히 멜팅 팟이라고 표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도가니란 말을 많이 쓰는데 우리 식생활 문화에서 도가니탕은 건강을 위하여 몸보신하는 메뉴로 사람들이 즐겨 먹기 때문이다. 도가니탕하면 각가지 몸에 좋은 고기와 물렁뼈들을 한데 섞어 푹 끓여서 먹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어서 멜팅 팟 하면 너도 나도 개개인이 모두 함께 섞여서 어우러진다는 뜻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혹자는 미국의 멜팅 팟의 뜻은 모든 인종이 아예 모국은 저버리고 미국이란 도가니 속에 녹아들어가 위대한 미합중국으로 한데 어우러진다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미국사람들이 생각하는 멜팅 팟은 그런 뜻이 아니다. 한국인이면 한국인의 전통과 문화를 지키면서 그리고 유대인이면 유대인의 풍속과 그들의 유산을 지키면서 말하자면 세계의 각 민족은 자기의 고유문화를 자유로이 간직하면서 그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그 커뮤니티가 멜팅 팟 안으로 들어와서 서로의 문화를 교류하고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를 돕는 것으로 어우러져 미합중국을 이끌어 나가자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멜팅 팟은 세계 모든 나라의 종족, 모든 종교, 사상, 문화, 신조 등이 한데 모여 어우러진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미국에서는 세계의 어떤 종족이든 미국에서 사는 것이 허용되고 시민이 될 수 있으며 그들의 종교를 떳떳이 섬길 수 있고 그들만의 문화와 전통을 미국 속에서 마음껏 누리고 펼칠 수가 있다. 개개인의 인격이 존중되고 따라서 그들의 커뮤니티가 존중되어 각 커뮤니티는 저마다의 입장에서 미국의 정치에 목소리를 낼 수가 있다.
이것이 미국을 이끌어나가는 기본 정신이며 이것이 위대한 미국의 멜팅 팟의 힘이다.
미국의 힘은 이들 여러 종족이 이룬 수적(數的) 배경이며 여러 종족이 지니고 있는 문화의 다양성이다.
우리 한인 커뮤니티는 일 년에 한 번씩 미국 속에서 태극기의 물결 속에 올림픽 거리를 차단하여 우리나라 국위를 선양하는 퍼레이드 행진을 하고, 놀만디 대로(Normandie Avenue)를 나흘간이나 차단하여 우리 고유의 문화를 펼치는 장터를 개장한다. 미국 말고 세계의 어떤 나라에서 이런 일이 허용될까 의문이다.
현재 미국은 이슬람교의 알라 신을 섬기는 대부분의 나라들과 수년간이나 사이가 좋지 않고 주로 이들 중 몇 나라들과는 전쟁 또는 냉전을 하고 있으면서도 미국 속의 알라 신을 섬기는 종교의 자유는 철저히 보장되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 법원은 법정에서 증인선서를 할 때에 성경 대신 코란에 선서할 수 있음을 2007년에 인정하였고 미네소타 주 출신으로 연방의회 하원 의원으로 당선된 이슬람교도인 케이스 엘리슨 국회의원은 성경 대신 코란 경전에 손을 얹고 의원 취임 선서를 하여 세계의 이목을 끈 바 있으며 현재 미합중국의 연방의원으로 미 국민을 대표하여 정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것이 자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미국의 정신이다. 미국 건국 230여년 만에 드디어 오바마 흑인 대통령이 선출되는 이변이 일어났고 백인들만이 대통령이 되어오던 미국정치의 불문율을 깨트렸다. 세계인이 추구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바로 이런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우리는 위대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새삼 상기시키고 싶다. 이 위대한 나라의 정신을 우리가 대대로 잘 지켜나갈 때에 언젠가 우리의 한인 후손도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나는 기대한다.
김진형 / LA카운티 노인복지국 커미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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