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많이 나았소”
부인에 안부 등 외손자 자료 공개
도산 안창호 선생을 비롯한 항일 독립지사들의 1911년 미국 입국 기록이 뉴욕의 엘리스 아일랜드 재단에서 한국에서 온 인턴 금교혁씨에 의해 발굴된 가운데(본보 22일자 보도) 안창호 선생이 뉴욕 도착 직후 가족에게 보낸 엽서 등 관련 유물이 22일 도산 가족에 의해 공개됐다.
도산의 장녀 안수산 여사의 아들이자 도산의 외손자인 필립 커디씨는 이날 도산 선생이 부인에게 보낸 엽서 등을 공개하며 “이번 뉴욕 입국 기록 발견을 통해 할아버지의 독립운동의 잃어버린 고리들이 밝혀지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날 공개된 엽서는 도산이 1911년 9월4일 뉴욕에서 중가주 디뉴바에 머물고 있던 부인 이혜련 여사에게 발송한 것으로, 도산이 전날인 3일 뉴욕항에 도착했음을 보여주는 입국 기록이 발굴됨에 따라 영국에서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부인에게 급히 소식을 전하는 ‘자연인’ 도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도산은 영국에서부터 타고 온 ‘칼레도니아호’의 모습이 담긴 엽서에 “이 배로 왔소이다”라고 쓰고 “오늘에야 미국에 왔나보오. 어제 저녁 6시에 뉴욕에 상륙, 여관에서 자고 지금 일어났소이다.
이곳에서 열(흘)동안 지체하겠으니 오늘 방을 따로 얻어보겠소이다”라고 부인에게 도착 소식을 전했다.
또 도산이 묵었던 호텔의 모습이 찍힌 엽서에는 캘리포니아 디뉴바의 미세스 C. H. Ahn 앞으로 주소가 나와 있고 ‘몸이 아팠으나 대서양을 건너면서 많이 나았다’고 안부를 전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커디씨는 “지금까지는 이들 엽서와 서한들을 통해 할아버지가 일본 정부의 탄압을 피해 1911년 미국 입국한 상황을 추정했지만 이번에 발견된 입국 기록에 따라 역사적 증거가 마련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LA총영사관은 뉴욕 총영사관에 전달된 도산의 입항 기록 사본을 받아 도산 가족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외손자 필립 커디씨가 도산이 1911년 9월 뉴욕에 도착한 후에 부인 이혜련 여사에게 보낸 엽서 사본을 들어 보이고 있다.
도산 선생이 보낸 엽서 사본. 발송 날짜가 도착 다음 날인 단기 4244년(서기 1911년) 9월4일로 적혀 있고 ‘칼레도니아호’를 타고 어제 뉴욕에 도착했다는 내용도 볼 수 있다.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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