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사망하자 미국 언론에는 그에 대한 일화가 쏟아져 나왔었고 대부분의 논객들은 그가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미국 최고의 입법가요 휴머니스트로 멋지게 인생을 마감했다고 평했다.
특권층 집안 장난꾸러기 막내아들의 인간승리로 요약되는 그의 일생을 보면 우선 명망가의 아들 노릇이 참으로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아버지는 테드에게 집안의 물질적 풍요를 물려받아 그저 편안히 살겠다고 결정한다 해도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은 변함이 없겠지만 좀 더 깊이 있는 삶을 살려는 다른 형제들에게 시간을 쏟아야 하므로 너와 보내는 시간은 줄어들 것이라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던가.
그는 지독하게도 잘난 형들을 셋이나 두었었다. 그들이 모두 일찍 죽고 30대의 나이에 거대 집안의 가장이 되어버린 그는 케네디라는 이름값을 해내야하는 엄청난 부담감에 시달렸던 것 같다. 죽는 날 까지 그를 자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는 채퍼퀴딕 사건만 해도 그렇다. 그의 성이 케네디가 아니었다면 오히려 보다 이성적 판단을 내리고 양심적으로 행동하기 수월하지 않았을까.
케네디 상원의원의 세 자녀들은 삼촌들처럼 아빠도 암살을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렸으며 그는 집안에서도 방탄조끼를 입고 지냈다한다. 첫번째 부인 조운과의 결혼은 정치인의 아내가 되기를 망서리던 그녀를 설득, 테드의 아버지가 강행을 시켰고 행복하지 못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다 결국 이혼을 한다. 이러한 여러 상황들이 그들 바람둥이에 알코올중독자로 만든 원인을 제공했으리라 짐작한다.
그를 인간적 허물에도 불구하고 ‘큰 사람’으로 존중받도록 만든 것은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해 그들을 보호하고 도와주는 수많은 건강, 교육 법안을 만들었으며, 이를 위해 여야를 떠나 모든 의원들을 설득하고 합의를 이루어 냈던 그의 열정이 사람들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상원에서 가장 농담을 잘하고 장난기가 많은 사람으로 통했었고 누구도 미워하기 힘든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70회 생일파티를 전 현직 스태프들이 열어주기로 하고 그 사실을 유포했더니 전국에서 1천5백명이 넘는 전 현직 직원들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루었다는 사실은 케네디라는 이름만으로는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강도 높게 일을 시키지만 세심하게 배려할 줄도 아는 보스였다고 한다.
9-11 사태 때 보스톤발 비행기가 사건에 끼어있어 피해자가 170명을 넘은 매서추세츠 주의 상원의원이었던 테드 케네디는 그 모든 피해자의 가족들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위로하였고 그 후에도 수차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도움의 손길을 뻗쳤었다는 사실이 그의 사망 후에야 언론에 알려졌다.
이름에 짓눌려 괴로워했던 그가 나중에는 그 이름을 최대로 활용, 남을 배려하고 도와주는 데에 힘을 모았고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한 것이 아니었기에 당당하게 누구라도 설득하고 필요하면 부탁도 할 수 있었으리라. 뒤늦게 자신을 이해해주는 배우자를 만나 인생 황금기를 맞은 그는 정말 진하게 인생을 즐기며 활짝 웃는 얼굴로 최후를 맞을 수 있었다.
그가 몸으로 보여준 잘사는 방법은 결국 나누고 베푸는 인생이다. 이것은 돈과 명성이 없어도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에서 세상은 결과적으로 공평한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유경 / Whole Wide World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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