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시안’(Kosian)이라는 낯선 말을 접했다. ‘코리안’과 ‘아시안’을 합성해 만든 말이란다. 한국인과 아시아인 사이에서 태어난 2세, 그러니까 혼혈인들을 일컫는 용어다. 10여 년 전부터 한국내 외국인 노동자 권익 단체들이 쓰기 시작한 말이라는데, 기자의 과문 탓으로 이제야 알게 됐다. 엊그제 뉴욕타임스에 실린 하인즈 워드 기사를 보고서다.
‘아메라시안’(Amerasian)이라는 말도 있었다. 미군 출신 백인 또는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들이 여기에 속한다. ‘받아들임을 향한 여정’(The Journey Toward Acceptance)이라는 제목의 지난 9일자 뉴욕타임스 스포츠면 머리기사는 바로 한인 혼혈인 출신 프로풋볼 스타 하인즈 워드와 그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한 8명의 젊은 아메리시안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워드는 지난 2005년 소속팀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수퍼보울 우승때 MVP에 등극하면서 어머니의 나라 한국에서 센세이션의 주인공이 됐다. 워드가 30여년만에 처음으로 찾은 한국은 그를 영웅으로 환대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다. 그러나 워드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 드리워 있는 ‘어두운 그늘’을 봤다고 했다. 멸시와 차별 속에 사회의 낮은 곳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에 갇힌 한국내 혼혈인들의 모습에서 바로 어릴적 자신의 모습을 보고 “거기에 한 줄기 빛을 비추고자” 이들에게 격려와 희망을 주려는 작은 노력을 시작한 것이다.
워드가 초청한 청소년들 중에는 왕따를 견디다 못해 자살을 두 차례나 시도했던 청년도 있었고 흑인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곱슬머리를 왜 곧게 펴지 않느냐고 교사에게 혼난 여학생도 있었다. 어른이 다 된 대학생들도 자신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펑펑 울었다고 했다. 워드에 대한 태도와 유명인이 아닌 혼혈인들을 향한 시선이 너무도 다른 상황이 한국 사회의 위선을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는 기사의 지적은 마치 나의 가족의 치부가 드러나는 듯한 당혹감으로 다가왔다.
한국내 혼혈인들은 2만여명 정도라고 한다. 극소수라고 여겨질지 모르겠으나, 한국 사회가 사실 혼혈인들 뿐 아니라 다른 사회적 소수자들에게도 유달리 가혹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떨치기는 어렵다. 다민족이 사는 미국에서도 한인들이 백인 이외의 소수 민족들에게는 유난히 멸시적 태도를 갖는 것을 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우리가 혼혈에 대한 색안경을 벗고 ‘그들’이 아닌 ‘우리’로 받아들일 줄 아는 의식의 전환을 이뤄야 하는 것은 단지 윤리적 당위성 때문만은 아니다. 혼혈들이 함께 사는 세상은 이제 우리에게 성큼 다가오고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내 한인 인구 중 혼혈의 비율이 12%를 넘었고 특히 18세 미만 연령층에서는 4명 중 1명 꼴이라는 게 센서스 통계다. 우리의 자녀의 자녀들이 혼혈이 될 가능성에 대처하는 법을 지금부터 준비하고 연습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김종하 / 사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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