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오픈 스튜디오를 했다. 원래는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과 일요일에 하게 되어 있는 건데 지난 여름부터 몸이 안좋더니 점점 컨디션이 안좋아 그만 포기해버릴까 하다가 일요일에 한 서너시간 열었다. 그래도 오픈 스튜디오를 한게 어느새 십수년이 되어 이제는 매번 내 그림을 보러 오는 분들도 계신데 그냥 보내드리기 미안해 예우차원에서 연 것이다. 확실히 불황은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 지난 번만해도 파킹장이 텅텅 비고 복도가 한산했는데 이번엔 차들이 입구까지 빼곡차고 복도가 북적북적 하게 인파가 많았다. 사람이 많기는 해도 아직 불황이 끝난 건 아닌지 그림을 사서 들고 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내 스튜디오에도 한꺼번에 스무명 정도의 인파가 어깨를 부비며 드나든다. 몸이 아파 작업을 별로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꺼내놓으니 그래도 틈틈히 마무리 지어놓은 작품들이 완성도도 높고 그럴듯해 마음은 흡족했다. 늘 게으름 때문에 피나게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아 나도 내가 싫을 적이 자주 있는데 한편으론 그래도 수십년을 놓지 않고 계속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때로는 신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몸이 너무 많이 아프면 현실김각이 떨어져서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안개속인듯 뿌우옇게 느껴지고 코앞의 세계가 딴세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비지니스에 재주가 없는 나는 평소에도 팔려고 눈을 부릅뜨지도 않고 설명하려고 열을 내지도 않고 묻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라고 하고 그냥 책을 보거나 앉아 있는다. 그런 판에 이번엔 몸마저 아프니 더더욱 인파가 아득하게 느껴진다. 팔 생각을 안하니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좋았다. 고즈넉하기 조차 한데 한 여자가 다가왔다. 추레한 입성이지만 단정한 분위기였다. 오픈스튜디오를 하면서 자주 느끼는 건 미국사람들은 입성으론 부자인지 아닌지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슬리퍼 찍찍 끌고 찢어진 청반바지에 귀를 서너개나 뚫은 껄렁해 뵈는 여자가 그림을 사고 내놓는 수표에서 의사인 걸 알게 되기도 하고 잘 차려 입고 거만한 표정을 하고 해마다 와서는 이 방 저 방 드나들면서 와인이나 축내고는 절대로 돈은 풀지 않고 다니는 이들도 있다. 암튼 조용한 태도와 목소리를 가진 그 여자가 나는 돈이 없거든요. 하고 말을 시작하길래 값을 깍아달라는 건줄 알았다. 얼마정도 생각하세요? 하고 물으니 고개를 흔들며 정말 돈이 없다고, 근데 어떤 식으로든 나를 돕고 싶은데 힘이 없으니까 불렛싱을 주겠단다. 그러면서 여기에서 당신의 그림이 제일 훌륭해요. 한다. 팔 생각을 하지 않던 상황이어서인지 기분이 좋았다. 그러더니 곧 다른 이가 나타나 한 손엔 돈을 들고 한손으론 내 그림을 꼭 쥐고 죽어라고 깍더니 행복해 하며 사갔다. 그 여자가 블렛싱을 해주어서인가? 너무 깍아서 좀 기분이 나쁘려고 했는데 한편으론 그렇게 해서라도 내 그림을 갖겠다는 열의가 고맙기도 했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는 사람없고 모든 사람이 다 싫어 하는 사람없듯이 그림 또한 모든 이들이 다좋아하는 그림없고 모든 이들이 다 싫어 하는 그림 없다. 누구든 그 풍을 좋아하는 부류는 있는 것 같다. 그래야 공평하게 살수 있는 거겠지. 그림 산 사람이 돌아서는 순간 따라나가 문을 닫고 얼른 불을 끄고 달려라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아! 천국같은 내 침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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