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영 (자유기고가)
11월은 감사의 계절이다. 풍요로운 수확을 감사하고, 지난 한해 즐거웠던 일, 기뻤던 일, 그리고 고통스러웠던 일, 슬펐던 일도 감사한다. 그로 인해 삶이 풍요로워지고, 그 깊은 의미를 알고, 진정한 감사를 새로이 느낄 수 있었기에 그 고통들도 감사의 대상일 수 있다. 이 계절은 나보다 더 깊은 고통에 있는 이들, 가난에 힘들어 하고, 삶에 치어 눈물짓는 이들, 그들의 아픔을 마음으로 나누고, 실질적 나눔으로 그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는 절기이다. 신의
위대하심에, 그 사랑에 무조건 감사해 눈물짓기도 하는 계절이다.
우리의 감사는 상대적일까? 나보다 못하고 나보다 더 고통 받는 이들이 있기에 그로 인해 나에게 주어진 것이 감사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낄까? 그것은 어쩌면, 조금은 이기적인 감사가 아닐까?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진정한 감사는 그 모든 것 속에 들어 있는 절대적 감사가 아닐까? 누군가와 비교해 느끼는 상대적인 감사가 아니라, 어떤 고통이나 눈물 속에서도,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가슴 뭉클한 감사.추수감사절의 감사는 그런 감사였던 것 같다. 영혼의 자유를 찾아 미국 땅을 밟은 청교도들이 이 험하고 추운 새 땅에서 거의 반 이상의 친구, 가족들을 잃어버리고, 추수의 계절에 감사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이, 그들이 살아남게 되어, 그리고 그에 더해 노동의 대가를 얻을 수 있게 해 준 것만을 감사하는 것이었을까? 그 감사는, 이 땅에서 살았고, 살고 있고, 또 살아갈 사람들, 그 축복받은 영혼에 의해 이루어지는 모든 풍요에 대한 감사가 포함되지 않았을까?
영혼의 자유를 찾아, 목숨 걸고 자신들의 모국을 버리고 떠난 그들이다. 그들의 감사는 살아있게 된 생명으로 인해 드리는 감사보다는 그들에게 허락된, 영혼의 자유와 그로인해 다가올 미래의 축복들, 그것을 느낄 수 있었기에 그들은 그 아픔과 슬픔, 고통 속에서도 감사할 수 았었을 것이다. 일주일에 두 번 방문해 침 치료를 해주는 양로원이 있다. 그중에 94세 된 어느 할머니의 이야
기다. 어렸을 적 고아가 되어 어느 집에 입양되었고, 그리고 그 집 양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너무도 편안하게 하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에게 분노보다는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에 오히려 분노를 보이는 나를 웃으며 바라보는 할머니. 그리고 그 할머니의 미소 속에 존재하는 삶에의 감사, 그 절대적인 감사, 누구도, 어느 것도 깰 수 없는 감사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 감사로 인해 그 분의 삶이 어떤 고통도 이기는 진짜 삶이 되었음도 느낀다. 그 안에 영원히 존재하는 인간 존재의 실상도 느낀다. 우리 모두에게는 정말 감사해야 할 것이 있다. 그 절대적 감사를 깨닫는 이들의 삶은 어쩔 수 없이 풍요로울 것 같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