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최되었던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COP15)가 당초 목표로 했던 ‘구속력 있는 합의문’ 채택 대신 120여 개국 정상들의 정치적 의지가 담긴 결정문을 선언하는 선에서 막을 내렸다.
선진국들의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강제하는 교토의정서 체제가 종료되는 2012년 이후의 기후변화 체제를 구축하고자 했던 코펜하겐 기후회의는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재정지원 마련 및 배분 방안 등의 핵심 쟁점을 풀지 못한 채 2010년 12월 멕시코에서 열리는 제16차 당사국 총회를 기약하게 됐다.
하지만 전 세계가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하여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을 재확인하였고, 당사국 총회 사상 가장 많은 120여 개국 정상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사실 자체만 해도 상당한 성과라 할 수 있다. 또한 몇몇 선진국의 재정지원 계획이 발표되고 열대우림 지역 보존에 관한 합의가 이뤄지는 등 일부 내용상의 성과도 있었다.
이번 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글로벌 녹색성장 연구소(GGGI) 설립 구상 등 선제적인 대응책을 제시하였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가교 역할을 적극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글로벌 녹색성장 연구소를 설립하여 한국을 녹색성장의 국제 허브로 만들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그동안 ‘저탄소 녹색성장’에 선도적으로 투입해 온 노력을 발판으로 녹색 연구 및 논의의 장을 한국이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글로벌 녹색성장 연구소는 궁극적으로 녹색성장과 관련된 국제기구를 지향한다는 것인데, 한국 정부를 중심으로 다른 국가 및 기후변화 관련 기관이 예산을 공동으로 부담하도록 하겠다는 구상을 담고 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아우르는 객관적이고 균형 있는 시각에서 국가별 상황에 적합한 녹색성장 방법론을 분석 제시함으로써 기후변화 문제의 해결과 경제성장 달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며, 개발도상국들에게 녹색성장을 통한 경제성장 노하우를 전수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1990년부터 2005년까지 15년간 온실가스 배출량이 두 배로 증가할 정도로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가 권고하는 최고 수준(2020년 배출전망치 대비 30%)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고 지난 11월 발표하였다. 비 의무 감축 국가인 한국으로서는 모범이 될 만한 감축노력을 제시한 것이다.
이에 따른 자신감과 국제사회에서의 발언권을 바탕으로 이번 회의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양쪽 모두에 대해 양보를 촉구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아우르는 ‘중간자’ 또는 ‘가교’ 역할을 자임하겠다는 적극적인 메시지를 던진 것은 한국이 그동안 기후변화 관련 국제 협상에서 다소 소극적으로 대응해 왔지만, 녹색성장을 지향하는 세계적인 추세에서는 이미 한국이 앞서 나가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다.
정부의 이런 노력과 의지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또 공감대를 얻게 되면 2012년 제18차 당사국 총회의 한국 개최가 더욱 유력해 질 수 있을 것이다.
2012년은 교토의정서 1차 이행기간이 끝나고 ‘포스트 2012 기후협력체제’가 정식으로 출범하는 시기이다. 1997년 일본 교토에서 개최되었던 제3차 당사국 총회 때 채택된 ‘교토의정서’가 2012년까지 세계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의 가이드라인이 되었듯이 새로운 전환점이 되는 2012년 총회에서도 새로운 체제와 관련된 액션플랜이 채택될 가능성이 크며, 이것이 이후 체제에 미칠 영향력도 클 것이다.
한국이 총회를 유치하게 된다면 명실상부한 ‘저탄소 녹색성장’의 선도국으로서 국제적 위상이 한층 제고될 것이며, 나아가 본격적인 선진국 진입을 향한 행보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도건우 /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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