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아티스트들 중에 ‘죽을 각오로 덤벼든다’는 마음이 부족한 사람은 없다. 이민 자체가 귀했던 시절의 1세대는 물론이겠지만 최근에 뉴욕에 온 작가들도 여전히 세계 미술계에서 변방에 가까운 한국의 작가로서 여간한 각오가 아니면 뉴욕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꽤 인정받았던 작가들도 많지만, 좀 더 편안한 환경과 기득권을 버리고 ‘정글’로 표현되는 이곳에 뛰어드는 것은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지 뉴욕에서의 성공이 주는 영예와 성취감이 너무 달콤하기 때문이다. 50이 다 된 나이에 뉴욕에 단신으로 뛰어 들어 최근 자신의 첫 번째 미국 개인전을 롱아일랜드 대학 허치슨 갤러리에서 열었던 박씨의 이야기도 어쩌면 별날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경우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한국 미술계에선 최고 엘리트 코스인 홍익대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지만 박은정씨의 첫 전공은 간호학과였다. “어릴 적부터 그림에 취미와 재능이 있었지만 보수적인 아버지(경상도 집안)의 반대로 미대를 포기하고 실용적인 전공을 택했던” 꽤 익숙한 스토리의 주인공 중 한명인 셈.
간호사 생활이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던 박씨는 결혼을 한 후 뒤늦게 다시 미술학도가 됐다. 두 아이를 키우는 주부 노릇을 하며 석사 학위를 받기 까지는 15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남편도 아내의 공부와 그림 작업을 반대하지 않았다. 박씨가 작업에만 몰두하고 집안 대소사에 아무 신경을 쓰지 않는 아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꾸준히 그림을 그리면서도 전시회를 거의 갖지 않은 것도 한 이유였다. 수줍음이 심한 그는 “꼭 남 앞에서 벌거벗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이 들어서” 자기 작품을 남들에게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문제는 박씨의 작품이 알려지고 해외에서도 전시되면서 불거졌다. 특히 유럽지역에서 좋은 반
응을 얻기 시작하며 자주 외유에 나서야했다. 전업작가로 바빠지는 박씨의 모습에 남편의 불만은 점점 커졌고 지난해 유럽 전시를 앞두고는 회복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싸놓은 작품들을 가로 막으며 남편은 “지금 떠나면 이혼”이라고 최후통첩을 했고 박씨는 짐을 챙겨 문을 나섰다.
유럽에서 돌아오는 공항에 기다리고 있던 남편은 박씨의 손을 끌고 곧 법원으로 향했다. 박씨는 “위자료를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남편의 요구를 선선히 받아들이며 도장을 찍었다. 아직 고등학생인 두 아이를 남기고, 작품을 팔아 마련한 조금의 돈을 가지고 박씨는 그렇게 8개월 전 뉴욕에 왔다. 작품 활동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온 중년의 여성 화가에게 작가로서의 성공은 선택이나 희망이 아닌 삶의 유일한 이유가 됐다. 그리고 그 절실함만큼이나 막막함도 깊었다.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난감하고 초조했다. 깊은 절망감에 시달리던 박씨는 결국 약을 마셨다. 다행히 이틀 후에 깨어난 박씨는 한번 죽다 살아난 사람 특유의 의지를 발휘해 악착같이 매달렸다. 롱아일랜드 헌팅턴 예술위원회의 공모에 응모했고 1월에 작가로 선정되어 첫 전시를 갖
게 됐다.
“비록 첼시나 미드타운 화랑은 아니지만 너무나 기쁘고 보람 있는 첫 전시”에서 뜻밖의 성과도 많았다. 강 컬렉션의 강금자 대표가 그의 그림을 눈여겨보고 5월 전시를 제의했고, 텐리 갤러리의 탈리아 디렉터는 8월 전시 일정을 잡아줬다. 하지만 무엇보다 힘이 되는 것은 한국에 있는 아이들의 전화다. 자신을 두고 떠난 엄마를 원망하지 않고 작가의 길을 가고 있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하고 격려해줬다. 지금이라도 다 포기하고 다시 주부로 살면 받아주겠다는 남편의 전화를 단호하게 끊을 수 있었던 것도 아이들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평론가 조나단 굿맨은 박씨의 대한 리뷰를 이렇게 시작했다. “박은정은 열정과 야망을 가지고 용기있게 뉴욕행을 결심하는 전 세계 작가들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불과 몇 달 만에 작가는 이미 메인스트림에 어떻게 합류해야 하는지 깨닫고 있는 것 같다.”그가 어떤 소중한 것을 포기하고 왔는지, 약을 먹고 죽을만큼 힘들었는 지는 뉴욕 미술계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 모든 것은 작품만이 말해줄 뿐이다. 그것을 안다면 박씨가 정말 메인스트림에 합류하는 방법을 깨달은 것이다. <박원영 기자>
정물화의 전통을 자기화하면서 이를 현대적인 문법으로 각색하고 있다고 평가받은 박은정 작가의 그림은 단순히 그림으로만 보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정물을 소재로 그린 후에, 그 속에 물을 넣은 투명한 비닐 튜브로 캔버스의 표면을 촘촘하게 감싼다. 그럼으로써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이 물이 담겨진 튜브를 통해 보이게끔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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