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를 겪은 우리 세대는 지진하면 1923년 8월31일 정오 2분 전에 일어났던 일본의 관동대지진을 떠올리게 된다. 나는 관동대지진의 참상을 상세히 기록한 ‘정오 2분 전’이라는 책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내가 일본 도쿄에 거주할 때 1년에 한 차례씩 ‘간다’(한국 YMCA가 있는 동네)에서 열리는 북세일에서 아주 싼 값으로 산 책이다.
당시 일본에 와 있던 미국 기자인 노엘 부시가 쓴 것을 일본인 무이고 에이이찌라는 사람이 일본어로 번역한 번역본이다. 총 202페이지의 작은 책자인데 책 전반부는 지진이 일어나기 몇 해 전부터의 일본 정세와 세계 정세를 비교적 상세히 기록하였고 책 중반부부터는 지진을 직접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였다. 우리가 잘 아는 조선인의 핍박 상황은 99페이지에서부터 나온다.
아이티 국민이 대통령을 원망하는 소리가 간간히 나오는 것을 보며 그래도 아이티는 원망을 쏟아내며 어리광을 부릴 대상이라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죄 없는 조선인이 일본의 천재지변의 덤터기를 쓰고 죽창에 찔려서 6,000명(일본 측 계산 500~1,000명)이 죽어간 사실을 나는 이 지면을 통해 우리 한인들에게 알리고 싶다. 나라가 힘이 없으면 국민이 어떤 수모를 받는가를 통감하게 될 것이다.
“… 일본이 조선농민의 토지를 몰수하는 법을 제정하자 가난한 농민들은 불만을 품은 채 기술 없이도 노동으로 먹고 살 수 있다는 일본으로 이주하여 도쿄와 요코하마의 빈민굴에서 살게 되었다. 그들의 사회적 지위는 미시시피의 흑인 노예생활과 같았다.
일본에 돌아온 조선 총독 미즈노는 내상(내무대신)으로 입각하게 되고 그는 대지진 이튿날 도쿄 주둔 사령관에게 재경 조선인들이 일본의 비상사태를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약탈은 물론 도쿄와 요코하마 시내에 조선인 부대를 편성하여 그 부대가 행동을 일으키고 있다고 소문을 유포하였다.
그 적의에 가득 찬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그들은 곧 자경단을 조직하였고 때마침 형무소에 불이 미치자 뛰쳐나온 죄수들과 어울려 손에 손에 일본도와 곤봉, 지팡이, 식칼 등으로 무장하고 조선인이라고 보이면 잡아 그 자리에서 찔러 죽였다…”
도쿄 근교의 ‘우라와’ 한인회장으로부터 직접 들은 말은 만삭이 된 조선여인의 배를 자경단원이 ‘에이 도 에이 도’하며 두어 번 찌르자 핏덩어리 아이가 쏟아져 나왔다고 했는데 이 책에는 이런 실화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관동대지진이 나고 근 90년이 지났다. 그 시절에 이미 세계 여러 나라가 일본을 원조하였다. 영국 400만원, 중국 150만원, 네덜란드 30만원, 프랑스 신문연맹 200만원 상당의 이동병원. 해외 일본인 100만원 등을 보냈다. 그 중에서도 미국 원조는 엄청 많아서 2,500만원을 상회하였다. 일본의 참화 소식이 전해지자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소녀들이 길거리에서 꽃을 팔아 모금했으며 생사(실)공장연합회에서 15만달러, 록펠러 가족이 20만달러를 보냈다. 일찍 세계에 눈을 돌린 약아빠진 일본이 얄밉기도 하나 우리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불쌍한 우리 민족이지만 답답한 마음도 치밀어 오른다.
아이티의 참극이 뉴스를 통해서 세계 어디든지 퍼지자 무수한 나라가 발 벗고 도와주러 나섰다. 90년 전 이국에서 죄 없이 몽둥이로, 일본도로 맞아죽은 조선인들의 후예인 우리도 아이티를 돕고 있다. 나도 교회에서 아이티를 위한 헌금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제발 이제는 한국에서 국회의원이 두루마기 입고 발로 올려 차기 하지 말고 거짓광고에 놀아나서 붉은 띠를 이마에 두르고 몇 달씩 광화문에서 소란 피우지 말았으면 한다. 온 국민이 함께 뭉쳐 대한민국 내 나라 일으켜서 더 이상 슬픈 역사를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옥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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