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천국’ 어울리는 스위스
보여베르그에서 돌아오는 길은 우리가 다녀 보지 않은 스위스의 길을 골라 차를 몰기로 하였습니다. 지도를 보고 경치 좋기로 유명한 곳을 골라 하루 묵으면서 가기로 하였습니다. 같이 있을 때는 운전은 항상 남편이 합니다. 간혹 제가 운전대를 잡으면 자는 척 하면서도 뒤에 오는 차가 어떤 것인지 아느냐, 신호등을 보고 재빨리 움직여라, 왜 이렇게 천천히 가느냐 등등 잔소리가 너무 많아 10분을 넘기기가 힘들어 자리를 바꾸게 됩니다. 경주라도 하듯이 저를 따라 마시는 차가 너무 많으니 급한 성미가 봐주지 못 하는 것이지요.
한여름이라 차에 에어컨이 있어도 햇빛이 드는 쪽은 어찌나 따가운지 지도를 무릎에 펴서 가리고 방향을 지시 했습니다. 이번에는 주로 스위스의 호수가 많은 지역을 거쳐 가기로 하였습니다. 독일의 뮌헨에서 서남쪽으로 차를 몰아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세 나라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브레겐즈 근처까지 도착했습니다. 거기서부터는 남쪽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스위스의 다른 마을과 조금도 다른게 없는 손바닥만한 적은 나라 리히튼슈타인을 거쳤습니다. 마치 소꿉장난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 했습니다. 하지만 이곳도 돈 놀이로 상당히 부유한 나라라고 하더군요.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발런제(Walensee)라는 호수의 남단에서 쉬기로 하였습니다. 호수 건너편의 절벽 경치가 절경이었습니다. 스위스는 경치 좋은 곳이 너무나 많아 그 정도의 곳은 명함도 못 내어 놓습니다. 산을 타고 내려오면서 슈위쯔(Schwyz)라는 마을을 향하는데 눈앞에 별로 크지는 않지만 뾰죽하게 솟은 산과 거울 같이 잔잔한 호수가 내려다 보였습니다. 이곳도 하나도 유명하지 않은 곳.“이 나라 사람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복을 타고 난 사람들인지 알고 있을까?” 차를 세우고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았습니다.
굴곡이 많은 산에 우거진 수목과 가꾸지 않아도 카펫 같이 자라주는 풀밭은 어쩌면 그렇게 고운지! 유유히 노니는 소떼들의 풍경을 보면서 발코니까지 나무로 모양내어 지은 산장, 만발한 꽃등 마치 동화에 나오는 한 장면 같다고 생각한 것이 수십 번 이었다니까요. 스위스는 정말로 그림엽서보다도 더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스위스에 가시면 라클렛이라는 그곳 특유의 음식을 꼭 시식해 보셔야 합니다. 치즈를 녹여서 뜨거운 감자 위에 얹어 먹는 것인데요. 익은 감자를 포크로 대충 문드러 트리고 그 위에 지글 거리는 치즈를 얹으면 마치 젖은 수건처럼 감자의 굴곡을 따라 드리워집니다. 감자와 따끈하고 말랑거리는 치즈가 혀에 닿으면 치즈를 별로 좋아 하지 않는 사람도 “음....”소리가 저절로 나올 판입니다. 꼭 한번 시켜 보셔야 합니다. 그렇게 먹는 치즈는 고린내도 안나고 진짜 괜찮거든요. 훈제된 햄, 짠지 같은 오이, 양파를 곁들여 먹거나 혹은 샐러드를 내놓기도 합니다.
또 하나 유명한 요리는 치즈 퐁듀 (fondue)라는 것입니다. 식탁 위에서 녹인 치즈가 담긴 그릇을 불 위에 올려놓고 꼬챙이에 끼운 빵 조각을 그 따끈한 치즈에 담구었다가 먹는 것입니다. 이것은 뭐 꼭 스위스 요리라고 하기 보다는 알프스 지방의 요리라고 하는 것이 맞지요. 프랑스나 오스트리아의 알프스 지방에서도 흔합니다. 오래 전부터 가보려고 벼르던 인털락켄 (Interlacken)에 도착 하였습니다. 이름 그대로 두 호수 사이에 끼어 있는 곳입니다. 높은 산이 많은 나라인데다가 호수가 둘 붙어 있는 곳이니 보나 마나 경치가 상당 하리라 생각 했습니다. 그 곳에서는 스위스에서 제일 높기로 유명한 융푸라
우 (Jungfrau, 젊은 처녀라는 뜻)가 보이기도 합니다. 마을에 서서 보면 융푸라우는 뒷편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앞에 있는 두 산이 더 높아 보인답니다. 여름인데도 산 위에는 눈이 하얗게 덮혀 있었습니다. 미리 호텔 예약을 한 게 아니니 자동차를 슬슬 몰면서 우선 겉모양이 마음에 드는 호텔이 있으면 들어가 보고 그 때 정하기로 하였습니다. 발코니마다 꽃이 듬뿍 늘어진 이 호텔 저 호텔을 기웃 거리다가 마을 가운데에 도착하였습니다. 눈앞에 우뚝 빅토리아 융푸라우 호텔이 나타났습니다. 남편이 자기도 들어본 유명한 호텔이라고 값을 알아보러 들어갔고 저는 오랜 자동차 여행으로 굳은 다리를 피고 두 손을 옆구리에 얹고 가슴을 폈습니다.
우리가 계획 했던 것 보다는 값이 좀 비싸다고 망설이는 남편에게 “야, 여기서 묵자”. 하며 부추겼습니다. 자기가 원할 때는 돈이 나오고 저에게는 항상 죽는 소리만 하구요. 뭐 그 뻔한 거 아시죠? 이번의 보이어베르그 대회와 스위스 여행을 올 여름 휴가라 생각하기로 하자며 그 곳에 짐을 풀었습니다.
옛날 지은 두 호텔 건물의 가운데 부분을 유리와 철을 이용하여 연결 하였더군요. 가운데의 천장은 두 층도 더 되게 높여 현대적 감각을 살렸습니다. 그리고 개롬하면서 끝 부분을 둥글게 한 아트데코 (art deco) 특유의 식을 훌륭하게 조화시켜 아주 멋지게 지었더군요. 그것을 디자인한 건축가의 재주에 감탄을 하였습니다. 이어진 양 쪽의 건물로 들어서면 옛날 지은 것이라 클래식한 스타일을 잘 보존하여 개조 해 놓았습니다. 방도 구석구석까지 섬세한 주의를 기울여 지어 놓았고 높직한 침대 위에는 날라 갈듯이 아주 가벼운 거위 털 이불이 얹혀 있었습니다. 널직한 욕실엔 검정색과 흰색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전부 하얀 타일로 되어 있었고 두 기둥과 욕조의 가장자리 그리고 세면대 윗 부분은 검은 그라닛 (granite 대리석 비슷한 돌) 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디자인을 잘하면 그냥 민자 타일에다가 그라닛으로 액센트만 주어도 멋이 있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하룻밤만 자고 나가는 것이라고 묵는 호텔을 별로 중요 하지 않게 생각 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아이, 그 하룻밤 자는 호텔이 무지하게 중요 하지요.
밤도 늦고 또 그 좋은 호텔을 두고 딴 데 갈 것 없다고 생각해서 테라스에 있는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칠월인데도 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오고 꽤 쌀쌀 하였습니다. 앞에 보이는 높은 산은 검은 윤곽만 어렴풋이 나타내고 있었고 눈덮힌 산에서는 은근한 빛이 반사되고 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포근함을 느끼려고 숄로 어깨와 목을 둘렀습니다. 다음 날에는 그 유명한 융푸라우에 올라 가보기로 하였습니다. 글쎄, 기차가 그 꼭대기까지 올라 간데요! 다음날은 구름이 짙을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들었지만 그 예보에 이상이 있기를 아주 간절히 바라면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때로 너무나 정확한 일기 예보가 원망 스러운것 아시지요? 짙게 내려앉은 구름 때문에 그 높은 산에 올라가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라, 아니 그렇게 날씨가 나쁘면 아예 기차가 올라가
지도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할 수 없이 그 대신 그 호텔의 유명한 스파 (spa)를 이용하기로 하였습니다. 요사이는 어디를 가나 ‘스파’ 천지이군요. 그것처럼 인기 있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마사지를 받는 곳은 약간 동양적인 운치가 있게 디자인을 해 놓았고 옆쪽으로 가보니 무척이나 널다란 수영장이 있었
습니다. 젊은 여자가 여러 사람들에게 수중 체조를 가르쳐 주고 있었습니다. 안에서부터 연결된 바깥 풀 (Pool)로 나가니 거기는 짠물로 되어 있는 쟈쿠지 욕탕 이었습니다. 따끈한 풀에 몸을 담그고 모락모락 오르는 김으로 어렴풋이 가려진 높다란 산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온 몸의 피로가 다 풀려 지더군요.
유명한 집의 마사지나 받아 볼까 하고 알아보았더니 예약으로 꽉 차서 30분이면 할 수 있는 발 마사지 밖에 못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거라도 받아보려고 동양식으로 지은 방에 앉아 차 대접을 먼저 받았습니다. 어느 절에라도 와 있는 것처럼 마음이 착 가라 앉더군요. 서양 사람들은 조용한 것을 못 참는 사람들이라 그런 분위기는 참 드물거든요. 숨을 한번 크게 내쉬고 그 소중한 분위기에 젖어 들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우리 것을 배워서 돈을 무진장 버는 구나! 오히려 우리가 스파를 더 멋있게 해 놓고 서양 사람들이 와서 홀딱 반하고 돈을 쓰고 가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호수를 끼고 인터락켄을 싸고 도는 고속도로에 올랐는데 아담한 교회와 올망졸망 붙어 있는 산장과 그 사이사이를 빈틈없이 채우고 있는 초원이 내려다 보였습니다. 그것은 그림 엽서보다 더 아름다운 또 하나의 마을 풍경 이었습니다. 그것은 정말 지상의 천국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장면 이었습니다. 꼬옥 다시 그 곳을 찾아오리라 생각 하며 길을 재촉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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