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선수가 우승하는 순간, 수십 년 전 한강에서 피겨스케이트를 타시던 아버님의 모습이 떠올라 한없이 울었습니다
포트리에 거주하는 이문희(73)씨는 지난 25일 피겨퀸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 시상대에 오르는 모습을 보며 남다른 감회의 눈물을 흘렸다. 이씨의 부친 이일(1986년 작고) 선생이 바로 한국 최초의 피겨스케이트 선수였기 때문이다. 이일 선생은 1924년 한국 최초의 피겨스케이트클럽인 ‘피규어스케잇구락부(Figure Skating Club)’ 설립을 주도한 인물이다. 또한 이듬해 열린 ‘제2회 전 조선 빙상대회’에서 처음으로 피겨스케이트 시범경기를 선보인 장본인 이기도하다. 이 시범경기는 한국 피겨의 첫 공식무대로 기록돼 있다. 이일 선생은 1948년 9월, 개칭된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초대회장으로 추대되기도 했
다.
5살 때부터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삼청동 연못과 창경궁(당시 창경원) 연못, 한강 등에서 피겨스케이트를 배웠다는 이씨는 미국에 주문해 구해 온 피겨스케이트가 성인 사이즈라 솜과 여러 켤레의 양말을 신고 아버님께 스케이트를 배웠던 것이 기억난다며 하지만 당시는 운동선수에 대한 인식이 낮았던 때라 피겨스케이트 선수가 되라는 권유까지는 하지 않으셨다고 밝혔다. 이씨는 일제시대 일본 명치(메이지)대학 영문과에 다니면서 미국인으로부터 피겨스케이팅을 배운 아버지는 귀국 후 최초의 한국 피겨스케이트 선수로 활동하셨다며 수많은 군중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꽁꽁 얼어붙은 한강의 얼음판 위에서 멋진 회전연기를 선보이시던 아버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김연아 선수의 우승을 아버님과 같은 한국 피겨스케이트 1세대 분들이 보셨다면 뜨거운 감격의 눈물을 흘리셨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씨는 김연아 선수의 올림픽 우승은 한국 피겨스케이트 90여년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엄청난 사건이라며 오늘의 영광을 위한 수많은 피겨인들의 노력을 기억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진수 기자>
이문희 씨가 한국 최초의 피겨스케이트 선수였던 부친 이일 선생의 사진을 들고 김연아 선수의 우승을 기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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