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대인 텃세에 당당히 맞선 한인이민자의 승리
맨하탄 75가 파크 애비뉴 일대는 유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고급 콘도와 코압빌딩들이 늘어선 부촌 주택가이다. 뉴요커들은 이곳을 레녹스 힐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지난 80년대초 구어메이 델리 가게를 오픈하려던 한인이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부딛쳐 4개월간 내부공사가 중단된채 고통을 겪던 끝에 뉴욕타임즈등 동정적인 언론의 지지를 얻어 끝내는 텃세를 이겨내고 점포를 열수 있었던 사건이 발생했다. 이지역 유태인 주민들에 의한 일종의 인종차별이었다. 당시 이사건은 뉴욕시장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인 이슈로 부각되어 미주류 언론의 주요 메뉴가 되기도 했다. 사건의 주인공은 최규성씨, 당시 미국이민 5년차의 초년생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83년 12월에 시작됐다. 뉴욕시 빌딩국으로 부터 퍼밋을 받아 점포 내부공사가 약 한달 정도 진척되고 있을 때였다. 주민 한사람이 갖다준 플라이어(전단지)에 델리가게를 오픈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커뮤니티 보드의 결정사항이 실려있었다. 이유가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았으므로 무슨 영문인지 잘 모르고 있었는데 해를 넘긴 1월달에 빌딩국에서 나와 공사를 중단시켰다. 커뮤니티 보드는 일종의 주민회의인데 이지역은 뉴욕시에서도 막강한 파워와 부를
지닌 유태인 그룹의 커뮤니티 보드가 빌딩국에 불평신고를 해 일단 공사를 중단시킨 것이었다. 후에야 드러났지만 주민들이 이 델리가게의 입점을 반대한 이유가 몇가지 있었다. 델리가 이지역의 특성을 망친다는 것, 일대 부동산 가격을 떨어드린다는 것, 계속되는 불빛과 소음 때문에 잠을 잘수 없게 된다는 것, 그외에 우리에게 낯선 대체로 바람직스럽지 못한 유형의 사람(a
generally undesirable type of person that we are not accustomed to)과 함께 범죄인들이 나타난다는 것등이었다.
미스터 최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당시 한인들이 청과업을 많이 했는데 보통 점포 앞에 좌대를 4피트 정도 앞으로 내놓고 장사하는 스타일이었다. 미스터 최도 한국인이니까 그럴것이다, 미관을 해칠 것으로 판단했던 주민들이 번스타인 부인의 주도로 연합전선을 편 것이다. 최씨는 미리부터 이지역이 랜드마크 지역으로 사적지 보호를 받기 때문에 외관을 함부로 뜯어고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좌대 설치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다만 공사를 재개해 빠른 시일내에 점포를 오픈할수 있을지에 골몰하고 있었다.
그러던 2월초쯤 어떻게 알았는지 뉴욕타임즈로 부터 인터뷰 요청 전화가 걸려왔다. 변호사 로버트 슈워츠씨와 상의했을때 변호사는 인터뷰를 절대로 하지말라는 주문이었다. 전화를 피하던 2주후쯤 윌리엄 가이스트 기자가 마지막 노티스를 주었다. 상대방은 인터뷰를 했다. 그런데도 인터뷰를 피하면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기사를 쓸수 밖에 없다고 하자 최씨는 당황했다. 그럼 인터뷰를 하자, 가이스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최씨는 자라온 성장배경, 왜 미국에 왔는지, 어떻게 해서 이가게를 얻게 됐는지에 대해 약간 모자라는 영어지만 성실히 답변했다. 2-3시간은 족히 됐을 인터뷰가 끝나자 기자는 위아 인 세임 보트(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있다)라고 알듯 모를듯한 인사로 악수를 청했다. 최씨도 궁금한 점을 물었다. 누가 제보를 했느냐. 커뮤니티 보드에서 편집자에게 여러차례 연락이 와서 취재를 하게 됐다. 기사는 언제쯤 나오느냐. 다음주쯤 나올 것이다.
변호사는 최씨로 부터 사후 보고를 받고 한숨을 쉬었다. 다음주에 기사가 나오지 않자 잘됐다, 다행이라고 말했다. 2주가 지난 1984년 2월28일(화) 새벽 다운타운에서 리커스토어를 하던 동서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신문 봤냐, 큰일 났다, 내용이 아주 불리하다고 귀띰했다. 부리나케 신문을 사보니 메트로 뉴스 1면에 사진과 함께 기사가 크게 실렸다. 번스타인등 지역 주민들의 주장이 주로 인용됐고 자신은 이제 갓 이민온 풋나기 이방인으로 묘사돼 있었다. 정착의지만 강했을뿐 경험이 모자란듯한 상인으로 취급했다. 동서의 귀띰대로 부정적인 해석을 했을뿐이다. 이어 뉴욕일원의 신문, TV등에서 계속 전화가 걸려왔다. 물론 모두 거절했지만 그중에 집요한 CBS-TV에 걸려들었다. 페랄도 곤잘레스 기자와의 통화에서 뉴욕타임즈 기사는 100% 최씨를 지지하는 내용이란 사실을 알았다. 강자인 주민들과 약자인 최씨의 입장을 모두 드러내놓고 약자에게 가는 독자들의 동정심을 건드린 기사였다. 독해력에 있어서 한국에서 배운 영어와 현지인들의 영어가 그렇게 차이가 난다는 사실도 이때 알았다.
CBS와의 인터뷰에서 최씨는 당당해졌다. 이것은 분명한 인종차별이다. 미국에 와서 열심히 번돈을 모두 투자했다. 리스나 공사내용에 잘못이 있다면 시정하겠다. 그리고 고급음식인 구어메이만 취급하겠다고 말한 인터뷰가 저녁뉴스 프라임 타임에 방송됐다. 이어 뉴욕타임즈 사설난에 최씨에게 동정적인 논평이 연일 실렸다.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 딕 캐벳은 자신의 칼럼을 통해 최씨의 입장을 두둔했다. 번스타인 부인이 고용한 비싼 변호인들과 주민들에게 설득공작을 펴는 750명의 하수인들과 뉴욕시 직원들에 대항해 홀로 싸우는 최씨는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격려하는가 하면 최씨가 내붙인 구어메이란 간판은 폭풍앞에 선 가련한 기도자의 형상이라고 동정했다. 칼럼니스트는 개점하면 첫 고객이 되겠다고 말하고 이사건이 법정으로 갈 경우에 대비해 1백달러를 보내왔다. 뉴욕타임즈와 CBS의 보도가 전환점이 되면서 여론이 최씨에게 우호적으로 돌아갔다. 여론은 가진 자와 없는자, 갓 이민온 자와 기득권자의 대결로 몰아가면서 유태인들에 대한 노골적인 언급도 나왔다. 승리의 여신이 최씨에게 미소지은 것이었다.
점포 오픈 하루를 앞두고 유리창을 닦는 최규성씨의 모습을 보도한4월7일자 뉴욕포스트. 아래 사진은 그랜드 오픈 테이프를 끊는 해리슨 골딘감사원장(가운데)과 최씨(오른쪽), 왼쪽은 동업자 김기철씨.
■ 뉴욕시장 선거 앞두고 정치적 이슈로 부각
김재택 박사. 골딘 감사원장 큰 힘
이사건을 더욱 확실하게 최씨편으로 만든것은 당시 잔제이대 교수였던 김재택 박사의 방문이었다. 뉴욕타임즈를 통해 사건을 접했던 김재택 박사가 찾아와 뭔가 잘못된것 같은데 도와줄 일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리곤 평소 친분이 있는 감사원장 해리슨 골딘을 소개했다. 뉴욕시장 후보로 거론되던 해리슨 골딘이 직접 최씨를 찾아와 상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감사원 조사를 약속하기도 했다. 최씨의 축출을 주장하던 번스타인 부인의 아들 앤드루 스타인이 당시 맨하탄 보로장으로 그역시 뉴욕시장 후보로 거론되던 시기에 두 정적간 최씨의 케이스가 정치적으로 핫이슈가 되었고 앤드루 스타인 마저 종국에 가서는 여론에 밀려 최씨의 입장에 손을 들어주게 되었다. 언론들의 성화에 못이겨 뉴욕시 빌딩국은 공사재개 허가를 내주게 되었고 그해 4월 8일 파크 75 델리는 오픈할수 있었다. 가진게 없는 초기 이민자의 완전한 승리였다. 오픈하는날 최씨는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그간 도와준 분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미국의 정신을 배웠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환영속에 문을 연 델리는 그후로 최씨가 10년간 운영했다. 이후 최씨는 종덕 회장때 뉴욕한인회에 참여, 부이사장, 부회장을 지냈다. 그는 자신이 어려울때 손길을 내밀었던 김재택 박사와 격려해주던 이윤구 박사(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김성수 소기업센터 소장등이 이사건과 관련해 기억나는 인물들이라고 했다.
점포를 찾은 김재택 박사(왼쪽)에게 사건을 설명한 최씨(오른쪽).
조종무<언론인,한국 국사편찬위원회 해외사료 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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