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 미국에 살면서 좋은 점이 많지만 어려운 점도 적지 않다. 그 중 가장 큰 것이 집에 들어가는 비용이다. 주택 소유주든 월 세입자이든 간에 매달 수천달러씩을 꼬박꼬박 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기자를 포함한 미국에 살고 있는 많은 한인들이 한국의 또래 직장인들을 부러워하곤 한다.
하지만 최근 한국을 방문한 뒤 생각이 좀 달라졌다. 한국의 30~40대 직장인들을 만나보니 이들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모기지의 덫에 발목 잡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IT 업체에 다니는 한 친구는 연봉이 3,500만원 정도다. 30대 중반 직장인으로는 적지 않은 액수다. 아내는 초등학교 교사여서 이들 부부의 연간 수입은 6,000만원이 넘는다. 이 정도면 한국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들 부부는 사는 게 여유가 없다고 한다.
지방 출신인 이들 부부는 서울에 정착하면서 노원구에 30평형대 아파트를 구입했는데 3억원 가운데 절반을 은행에서 대출받았다. 이 때문에 이들은 매달 원금만 250만원씩 은행에 갚아나가고 있다. 두 사람 가운데 한명의 수입은 고스란히 은행에 내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아내가 학교 일을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단다.
부산 해운대는 지방에서는 유일하게 10억원대 아파트가 있어 서울 강남에 버금가는 고급 주택단지로 뜨는 곳이다. 30대 초반의 한 부부는 지난해 이곳에 30평대 고층아파트를 구입했는데 이들 역시 은행의 도움을 받았다. 두 사람 모두 교사인 이들 부부는 젊어서 하루라도 빨리 빚을 없애자며 매달 200만원 가까운 돈을 은행에 갚고 있다.
문제는 한국의 아파트 가격이 더 이상 오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언제 거품이 터져 가격이 폭락할지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1월말 현재 한국에는 무려 약 12만 가구의 새로 짓는 아파트가 미분양된 상태고 일부 단지는 분양이 제대로 되지 않아 공사 대금이 제때 들어오지 못해 공사가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다.
대구에서는 한 고층 아파트 단지의 분양 실적이 저조해 건설사가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에 입주자를 모집하자 기존 분양자들이 새 입주자들의 이사를 방해하는가 하면 울산의 한 아파트 단지는 입주가 시작된 지 한참 지났지만 저녁에 불 켜지는 집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등 서서히 가격 하락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깡통 주택의 양산은 부동산 가격의 폭락으로 이어져 경제 전체가 침체 국면에 빠져들 수도 있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해보면 주택 문제로 한국 젊은이들을 부러워할 이유도 없어진 꼴이 됐다. 그래서 요즘 같은 때는 월세 내며 아파트에 사는 게 오히려 마음 편한 건지도 모를 일이다.
정대용 / 사회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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