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듣던 아름다운 루가노 호수
지난해 우리가 가 본 곳 중에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단연 빌라 카스타뇰라 (Villa Castagnola) 라는 루가노 호수가에 있는 호텔입니다. 그 곳의 경치나 호텔이 인상적인 것도 중요 하지만 그 호텔 주인인 가르조니 집안 사람들이 너무나 좋았던 것이 마음에 들어서입니다. 그 곳의 묘한 지리를 제가 좀 설명해 드리지요. 이태리와 접하고 있는 그 곳의 영토는 스위스이지만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가 다 이태리 사람입니다. 호텔 직원들은 이태리어, 프랑스
어, 독일어 그리고 영어까지 하였습니다.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이태리식 멋과 체계적으로 일을 해 나가는 스위스 정신이 잘 혼합된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 곳을 찾게 된 것은 남편의 친구인 뉴욕의 유명한 로펌 파트너인 데이비드와 애인 가비 덕분 이었습니다. 2년 전에 그 두 사람이 우리 집에 왔을 때 우리는 오붓한 년말 파티를 열었습니다. 옆 동네에 사는 화란의 사업가 쿤과 그의 처 리나도 초대하고 제네바에 사는 독일친구 부리타와 필립도 초대 하였습니다. 그 후에도 여러번 가비를 만났는데 어찌나 여자의 표정이 밝은지 같이 있는 것이 즐거워지게 하는 여자였습니다. 말로만 듣던 루가노 호수도 볼겸 우리는 가비네 집의 호텔을 가보기로 하였습니다. 밀라노에서 손님을 만난다는 데이비드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우리가 가 있는 동안 자기도 오겠다고 하였습니다. 드디어 11월 말 우리는 말로만 듣던 루가노를 찾았습니다. 지도를 보고 알프스를 넘어 가까워 보이는 길로 가는데 어찌나 꼬불거리는지 예정보다 오래 걸려 다섯 시간인가 걸렸습니다. 호숫가의 루가노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알프스 주변에는 아름다운 곳이 너무나 많아 뭐 한 곳을 집어 여기가 제일 좋다고 말을 할 수가 없군요.
호숫가의 빌라 카스타뇰라는 앞에 넓은 정원을 사이에 두고 있었습니다. 야자수가 있는 것으로 보아 겨울에 그렇게 춥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호텔의 로비에 들어서니 아담하면서도 아주 고급이었습니다.
옛날 어느 귀족의 저택이었다고 하였습니다. 너무 크지 않은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한 쪽 복도에 멋진 조각품이 놓여 있는 것이 보이더군요. 호텔에서 일하는 가비의 언니가 나와서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가비와 닮은 점이 별로 없었습니다. 마악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느라 온통 벌려 놓았다며 이태리 사람 특유의 손짓을 해가며 웃었습니다. 우리가 차지한 스위트에는 욕실이 둘이나 있는 것이 금방 눈에 띄었고 방과 리빙룸도 아주 센스 있게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분위기가 밝으면서도 품위가 있었습니다. 괜찮은 호텔일 것이라고 생각 했지만 가비네서 그렇게 좋은 호텔을 갖고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야! 참 괜찮은데....” 우리는 방을 돌아보며 지껄였지요.
두 번째로 만나는 가비의 엄마, 마리사는 여전히 멋쟁이에 명랑하였습니다.
이태리 여자들은 멋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여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하였습니다. 로비의 아늑한 소파에 앉아 우리 방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고 하니 어느 방이냐고 번호를 물었습니다. 스타일은 같지만 방마다 다 조금씩 다르게 장식했다고 하였습니다. 실내 장식에는 마리사가 많이 참여 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를 모두 저녁 초대 한다고 하여 데이비드, 가비 언니와 함께 우아한 호텔의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가비 언니가 해 놓은 화려한 듯 하면서도 우아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달걀노른자가 들었다는 라비올리 (ravioli)를 먹어 보라고 하였습니다. 보통 라비올리는 고기나 치즈 혹은 시금치 같은 야채를 넣고 만드는데, 껍질이 익는 동안 노른자가 익어버릴 것 같은 생각에 호기심이 났습니다. 한 번도 먹어 본 일이 없어 그것을 골랐지요. 마리사와 남편이 시킨 리조토 (이태리식 밥) 는 공기 모양으로 만든 얇은 과자 안에 담겨 나왔습니다.
제 앞에 놓인 커다란 라비올리 주위에는 약간의 노르스름한 쏘스가 흘려져 있었고 위에는 종이장 같이 얇게 저민 트러플 (버섯의 일종. 이태리 에서는 타르투포 라고 함) 이 뿌려져 있었습니다. 제가 요리 전문이라 특별히 해 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포크로 누르며 잘랐더니 아직 완전히 엉기지 않은 달걀 노른자가 흘러 나왔습니다. 위에 얹힌 트러플과 함께 자른 라비올리를 입에 넣는 순간 “음...” 혀로 느끼는 기막힌 맛의 전율과 함께 그 은은하면서도 야릇한 향기가 온 가슴을 꽉 채우는 것 같았습니다. 숨을 들여 마시며 눈을 한번 지그시 감았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먹으며 그 맛을 즐겼습니다. 어떠냐고 뭇는 나이가 듬직한 웨이터에게 미소를 지으며 눈을 찡긋해 보였지요.
빵을 잘라 접시에 남은 국물을 찍어 먹으며, 마리사를 향하여 “양해해 주셔요” 라고 말했습니다. 빵으로 접시의 국물을 찍어 먹는 것은 집에서나 할 수 있는 일이지 밖에서는 좋아 보이지 않는 태도이거든요. 너무 맛이 있어 그 국물을 그냥 버릴 수가 없다고 말 했습니다. 메인코스로 나온 생선에는 조개의 주스가 흘려져 나왔습니다. 프랑스 남단에서는 스페인이나 이태리 요리의 영향을 볼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확실히 이태리 요리에 세련된 스위스의 영향을 볼 수 있었습니다. 후식이 나왔을 때는 오늘은 완전히 과식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다음날 우리는 구름이 낀 날씨 때문에 케이블카를 타고 산위에 올라가 호수를 내려다보려던 계획을 취소했습니다. 편한 신을 신고 가비 언니가 추천한 대로 카스타뇰라에서 왼쪽을 향하여 호숫가를 걷기로 하였습니다. 루가노 호수는 에비앙에 있는 레망 호수 보다 훨씬 적어 더 아담한 기분을 내는 곳입니다. 기다란 피니안 트리 (한국말로 뭐라고 하는지 모르니 양해해 주셔요)
가 늘어선 멋있는 저택을 볼 때면 저런 집에서 살수 있다면 거기서 살아도 괜찮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정원으로 둘러쌓인 물가에 있는 유난히 큰 저택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마침 박물관이었습니다. 인도에서 많은 세월을 보낸 사람의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흑백 사진이지요. 좀 실례가 되는 말이지만 저는 사진을 보고 정말 예술적이라고 감탄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옛날 귀족의 저택이었던 그 아름다운 박물관 건물과 정원, 그 정원에
서 본 장관이었던 호수의 경치는 마치 엊그제 보았던 것처럼 머리에 생생하지만 사진 작품은 멀리 까마득하게 보일락 말락 합니다. 잎은 다 떨어지고 짙은 주황빛이 나는 감이 수도 없이 달린 감나무가 여기저기 눈에 띄었습니
다. 모양이 납작한 것으로 보아 제가 좋아하는 단단한 감일 것이라 생각 했습니다. 마악 감을 따려고 긴 막대기로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하나만 맛보게 해 달라고 청을 하려는데... 남편이 말렸습니다. 남편은 독일 사람이라 그런 것이 실례라고 생각 했지만 그 이태리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 주었을 텐데요. 호숫가의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노닥거리기도 하
며 오르락내리락 하는 길을 우리는 장장 다섯 시간이나 걸었습니다. 사흘 동안 매일 만난 가비네 식구들은 어찌나 다정다감한지 떠날 때쯤에는 그집 식구가 되고 싶은 생각을 간절히 하였습니다.
57) 새로운 한국
6월 중순 김사장님을 선두로 한 댄에어 회의가 한국에서 열린다고 하였습니다.
운송업을 하시는 김 사장님께서 우리를 초대해 주셔서 가게 되면 서울 식구들을 볼 수 있어서 더욱 더 즐거운 여행이 되지요. 우선 김포 공항 근처의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습니다. 세계 어디에 내어 놓아도 빠지지 않는 현대적인 공항 시설, 6차선 고속도로, 호텔도 멋이 있었습니다. 김 사장님을 통하여 다른 사업하시는 분들과 함께 골프와 식도락을 즐기고 한국 관광을 하면서 한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는 기회를 여러 번 갖게 되었습니다. 외국에 오래 살아 한국 것을 많이 잊어 버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적인 것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서양사람이 된 것도 아니니 지금의 저는 아무 쪽에도 못끼는 고향이 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여러나라에 살면서 한국에서 배운 구식대로 서양 남편을 뒷바라지 했으니 모든 것이 뒤범벅이 된 생활, 아니면 좋게 말하면 세계적인 생활이라고 할까요?
미국은 싱거운 천국이고 한국은 재미난 지옥이란 말이 있듯이 서울에 가면 곳곳에 재미난 곳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폭발하는 인구, 공해로 숨이 막히지만 센스 있게 차려 놓은 상점이며 식당, 찻집 등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면 친구들과 몰려다니고 싶은 곳이 수두룩하였습니다. 밤에도 활기가 찬 골목길. 서양 사람들도 그런 동양의 맛을 너무나 좋아 하더군요. 단 제가 참 한가지 아쉽게 생각 하는 것은요 우리 한국적인 길거리는 유일하게 인사동뿐인 것이에요. 실내 장식품을 파는 곳에 들리니 한국의 멋을 살린 작품이 있는가 하면 거기서 보는 한복도 완전히 예술품이었습니다. 은은한 색을 들인 창호지와 붓을 만지작거리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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