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다닐 때, 선형 대수 (Linear Algebra)라는 과목을 들었다. 여교수라 그런지 눈 한번 안마주치고 하는 강의는 마치 카세트 녹음기를 듣는 듯 지루하기만 했다.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강의였다. 기말 고사 때에는 한해 먼저 수강한 선배의 노트를 빌려 공부했다. 그 속에는 예제로 다섯 문제가 풀려있었다.
큰 작심을 했다. 이 다섯 문제들을 달달 외워서 하나라도 나오면 쓰고, 안나오면 F학점을 받기로 했다. 시험지를 받아들었을 때에는 다섯 문제가 있었는데, 세 문제가 외웠던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5번 문제가 제일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서, 먼저 급히 써내려갔다. 옆에 앉은 녀석이 나를 쳐다보니 기막히게 잘 푸는 것 같아 베끼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제일 먼저 풀어 내려간 문제라 문제 번호를 5번이라 하지않고 1번이라고 쓰는 큰 실수를 했던 것이다. 그 녀석이 F학점을 받았다.
불경기라 문단속을 철저히 해도, 최근엔 그것마저도 허술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컴퓨터를 통해서 도난당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 한인들의 블로그 운영 열기가 대단하다. 자신의 글을 올리기도 하지만 남의 글도 도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거짓말을 독자들에게 솔깃하게 써서 오도하는 경우도 많다.
작년, 영화 배우 최 진실이 왜 거짓에 무릎을 꿇었는지 알 것같다. 인터넷의 블로그를 통한 무책임하고 무차별한 공격을 보며, 준법 정신은 물론이고, 한국의 저작권법과 방송 통신법이 아직 수준 이하라는 것을 느낀다. 산업화로 인해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 못하고 정신 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쉽게 거짓말을 하고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못느끼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때로, 인터넷의 검색 엔진을 통해 이름, 칼럼 제목 및 칼럼 중의 주요 단어들을 점검해본다. 다움, 야후, 한국의 일간지 등의 블로거들이 퍼간 폴 손 칼럼들이 눈에 띈다. 저자와 출처를 밝히는 블로그도 있다. 한국일보 인터넷판에 실렸던 칼럼, “노년의 남자들이여”를 한국에서, 미국에서 여러 블로거들이 자신의 블로그에 옯겨 실었다. 그중엔 출처와 저자가 밝혀진 것도 있었다. 어느 독자는 내용 모두를 존대말로 바꾸고 몇 단어를 바꿔서 자기 이름으로 자신의 블로그에 게제했다.
이를테면,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호주머니의 동전 한닢도 생각하며 써야 한다. 그러니 자연히 경기도 움츠려든다.”는 칼럼의 시작이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호주머니의 동전 한닢도 생각하며 써야 합니다. 그러니 자연히 경기도 움츠려듭니다.”로 둔갑되어 있었다. 끝에는 그 독자 자신이 저자라고 쓰여있었다. 주소도, 이메일 주소도, 본명도 없어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 분의 블로그에 신분을 밝히고 “삭제해달라”는 글을 방명록에 남겼다.
그 독자가 사용한 “다움”에 연락했더니 원작자라는 것을 증명해야하는 서류들을 제출해야 했었다. 하지만 저작권 위반 신고를 했는데 신고 번호도 발부하지 않고 자동 답신이나 보내고 있다. 이 정도 수준으로는 개인 정보를 보호할 수 없다. 왜 한국에서는 민원이나 진정이 쉽게 해결 안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통령이 직접 “전봇대를 뽑아라”해야 뽑고, “김 길태를 잡아라”해야 잡으니, 국정의 크고 작은 모든 일까지 담당해야하는 이 명박 대통령이 안타깝기도 하다.
문제는 우리 한인들의 시민 의식이다. 이를 개선하지 않으면 선진국 진입은 물론이고 주류 사회에서 인정받기 힘들다. 저작권은 법에 의해 엄격하게 보호받고 있다. 인터넷에서 남의 것을 자신의 블로그에 무단으로 퍼다 나르자면 적어도 저자의 이름과 출처를 밝혀야한다. 굳이 인생의 F학점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
드디어, 그 독자의 거주지 주소도 자신의 블로그에 실린 내용들을 통해 추적해냈다. 불법 성형 수술로 나의 칼럼을 둔갑시킨 이 일에 대해, 유괴 당한 아들을 구출하려는 부모의 심정으로 직접 연락하려고 수차례 노력했었다. 며칠 후, 그 독자로부터 정중한 사과와 함께 삭제했노라는 이메일이 왔다. 문제 해결에 협조해주신 그 독자께 감사드리며 건강을 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