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소설가>의 에세이 “꽃피는 해안선”을 읽으면 이런 귀절이 나온다.
여수의 남쪽, 돌산도 해안선에 동백이 피었다.
돌산의 울림리 정미자씨 집 마당에 매화가 피었다.
그런데 이 곳 산호세와 샌프란시스코 사이의 작은 도시 Woodside에 있는 아름다운 Filoli Garden에 가면 돌산도 해안에 피는 동백이며, 돌산의 정미자씨 집 마당의 매화를 비롯하여 무슨 꽃이든지 볼 수가 있다. Filoli Garden은 약 654 에이커의 땅에 조성되어 있는 환상적인 정원이다. 1915년과 17년 사이에 윌리암 바워스(William Bowers) 부부에 의해 지어진 후 지금은 일반에게 공개가 되고 있는 곳이다.
가까운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었는지도 몰랐던 자신의 무관심을 탓하며 처음 찾아간 Filoli Garden은 그 이후로 특히 봄이면 빼놓지 않고 가봐야 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이 지역에 오래 살았지만 사진에 취미를 가지기 전에는 시간이 날 때면 가는 곳이 늘 비슷했었다. 라스베가스, 나파 밸리 등 잘 알려진 유명한 곳을 방문하는 것이 내가 시간있을 때 가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어느 날인가 사진에 매료되고 나서는 나의 행동 반경은 좀 더 다양해졌다. 신이 창조한 대자연에게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을 가지고 잘 보이지 않았던 작은 피사체에도 렌즈를 들이대며 그들과 대화까지 하기도 한다.
Filoli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꽃이 다 모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 봄이면 매화 꽃잎이 날리는 모습이 마치 바람이 불면 눈발 흩날리듯이 온세상을 혼곤스럽게 보여지기도 한다. 또한 수 많은 종류의 동백이 그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피었다가 느닷없이 철퍼덕 떨어지기도 한다.
이곳은 또한 장미, 수선화, 튜울립, 다알리아, 히야신스, 마가릿트, 미국 개나리, 철쭉, 진달래, 무궁화, 마티니 등 수 많은 꽃들이 피고 지는데 그 중에서도 정원 한 곳에 높은 하늘을 향하여 고고하게 피어있는 커다란 황목련 나무를 만날 수 있다.
화목원 입구에 피어있는 백목련, 자목련이 아름다운 꽃잎을 열고 그 자태를 뽐내는 시기이면, 황목련은 가장 늦게 피어나기 때문에 아직 봉오리가 다소곳하다. 특히나 “엘리자벳” 이라는 속명을 가지고 있는 황목련(Yellow Magnolia)은 다른 목련들처럼 흔히 볼 수 없는 꽃이기도 하여 작년에 휠롤리 가든에서 화분에 심겨져 있는 한 그루를 사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목련은 키우기가 참 힘이 든다고 한다. 햇살이 너무 세어도 아니되고 뿌리가 잘 자라도록 땅이 너무 습하거나 말라있어도 아니된다고 하여 나름대로 정성을 다했지만 몇 달이 지나니 그만 죽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늘창도 씌워보고 물도 열심히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자그마한 황목련은 더 이상 생의 기력을 읽고 시름 앓으며 이 세상과 하직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무를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면서 나는 이 황목련을 파내어 그린떰(Green Thumb)으로 유명한 친구에게 갖다주면서 살려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러고 6개월 후, 2-3주전에 그 친구가 내 키보다 훌쩍 더 커져버린 황목련을 가지고 왔다. 그때의 감격이란 이루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마지막까지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준 황목련에게 생의 경의를 느끼면서 이 작은 나무에게서 또 하나의 커다란 교훈을 얻었다면 내가 너무 감상적일까?
겹겹히 쌓여있는 노오란 꽃잎 속에 희망의 햇살이 가득한 한 그루의 황목련은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내게 속삭이는 듯하다. 삶이란 참으로 외경스러움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김훈은 “목련이 지고 나면 봄은 다 간 것이다” 라고 하였지만 봄은 아직 사방 천지에서 아른거린다. Filoli의 뜻처럼 “명분을 위해 싸우고, 나의 친구들을 사랑하며, 삶을 풍성하게 즐기면서” 살고 싶다.
P.S: Filoli라는 이름은 Fight for a just cause; Love your fellow man; Live a good life. 에서 앞의 두 글자씩을 따와 조합한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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