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 특히 이민 1세대는 비록 시민권을 취득해서 한국 국적을 상실했다 할지라도 이름만 미국 시민권자이지 실상은 한국과 미국, 두 나라의 국적을 가진 것과 진배없다. 그들은 비록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심정적으로 한국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이민자이다. 이중국적이라기보다는 이중국민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한 표현이리라.
실질적으로 미국 시민권자라 해서 한국에서 생활하거나 여행하는 데에 전혀 차별이나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다. 다만 법적 문제에 있어서 그 적용에 일부 제한을 받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미국 시민권자가 됐다고 크게 달라지지도 않는다. 선거와 피선거권, 연방 공무원 임용 자격을 가지며 외국 여행 때 미국 대사관의 보호를 받고 미국에 입국할 때 외국인보다 우선하는 편리함 등이 있다.
한국 정부가 자국민에게 외국인보다 더 많은 혜택과 복지를 베풀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국민에게는 외국인에게 없는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이 미국 영주권자에게도 한국인과 똑같이 이중국적을 허용한다면 이를 마다할 재미 한인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한국은 이제 영주권자에게 참정권까지 허용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를 그냥 좋다고 환영해야 할지, 한인사회가 더 골머리를 앓게 되었다고 할지 걱정되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참정권하면 쉽게 말하여 미국에 사는 영주권자들이 한국 정치판에 직·간접으로 개입해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고 잘 하면 자신들도 한 자리 차지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동안 미국을 아는 사람들은 미주 한인들의 권익신장과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치력을 강화하여야 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참정권에 앞장 선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소위 한인사회의 지도급 인사를 자처하는 정치성 인물로 막상 자신들은 미국에서 투표권도 없었으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지금까지 한국의 정치인들이 미국에 드나들면서 융숭한 대접만 받고 한인사회에 준 것은 사탕발림식 빈 약속뿐이었다.
이번의 참정권도 미주 한인사회가 성장하고 그만큼 힘이 생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결코 한국의 정치권이 스스로 미주 한인들을 진정으로 생각해서 나온 제도가 아니다. 한국의 정당이란 정강이나 정책도 없고 순전히 그때그때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산집합하고 있음을 우리는 너무 많이 보아왔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정당들이 참정권 시행을 제 공로인 양 떠들고 있음은 실로 가소로운 일이다. 참정권은 출발부터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나마 조용하던 미주 한인사회가 미국 투표권을 가진 시민권자와 한국 투표권을 가진 영주권자, 그리고 이도저도 아닌 정치 방관자로 나뉠 것이고 참정권을 가진 사람들도 출신 지역에 따라 제각기 호남, 영남, 충청으로 나뉘어 분열과 정쟁은 더욱 가열될 것이므로 한 마음으로 힘을 모아도 어려운 한인사회의 화합은 이미 물 건너간 것과 같다.
여기에 정치 지망생과 해바라기들은 더욱 극성스럽게 활동할 것이니 이래저래 부작용이 많이 생겨날 전망이다. 한국의 정치를 하려면 여기에서 왈가왈부하는 것보다 차라리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나 싶다.
미국에 살러 왔으면 이 땅에서 내 자신과 앞으로 커나갈 나의 후손들을 위한 정치를 펴는 것이 정도라는 생각은 나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조만연 / 수필가·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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