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길 (수필가)
지난 2월 ‘기획연재’ 난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본적이 있다. ‘사람을 죽여 지구를 점령한 징기스칸과 자신이 죽음으로써 지구를 점령한 예수 - 피로 쓴 역사는 업보로 돌아 온다.’는 주제였다. 징기스칸(이슬람교도)은 13-14세기에 걸쳐 중국북부, 이란, 러시아 남부, 태평양에서 흑해까지, 세계의 절반을 차지한 영웅이었다. 그런 징기스칸이 살인자이기 때문에 그 자손들이 오늘날 부정과 부패로 찌들은 삶을 하게 되었고, 그것은 조상이 지은 죄에 대한 인과응보라며 몽고를 폄훼한 어느 목사의 체험기였다. 징기스칸의 지은 죄 때문에 그 자손들이 벌을 받고 있다는 말은 ‘잘못 되면 조상 탓’이란 말로 들린다.
우리 애들이 ‘몽고반점’이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세계적인 부정부패도 징기스칸의 DNA 탓인가 싶어 할말이 없다. 과연 이 세상에 징기스칸만이 죄인인가. 과거를 돌아보면, 페르시아 다리우수 대왕이나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도 지구 절반을 점령했었다. 그 당시 탄생한 헬레니즘 문화가 인도를 통하여 신라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또한 180년간의 이슬람 국가와 십자군 전쟁(1096-1270) 이외에 같은 뿌리인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서로 얽히고 설킨 30년간의 유럽 종교전쟁도 있었다(1618-1648). 1521 년경에는 에스파냐(가톨릭)가 남미를 점령하며 원주민을 참살했고 모든 부녀자들을 노예로 삼았다. 1600년대는 유럽에서 신대륙으로 넘어 온 청교도들이 미국 본토의 인디언을 무참히 죽였고... 그런데 편견을 가지고 역사를 본다면 오늘의 빈 라덴에게 좋은 구실을 주는 것이 아닐까.
그 옛날에 아브라함도 이집트로 이주했었고 예수 그리스도도 어린 시절 이집트에서 보냈다. 또한 유대인들도 430년 동안 이집트에서 더불어 살다가 어느 날 모세와 함께 이집트를 탈출한 그들은 젖과 꿀이 넘치는 가나안의 땅, 그 원주민을 치고 점령했던 고난의 역사를 남겼다. 이런 저런 처참한 광경들을 보시고 계신 하나님, 예수를 침략자(지구를 점령했으니까)로 칭하는 주의 종을 보신다면 뭐라고 하실까. 우리 집에 한 살짜리와 두 살짜리 손자들이 장난감 가지고 당기고 밀치고 싸우다가 동생은 뺏겼다고 울고불고 야단이다. 그러다가 곧 웃으며 같이 논다. 남남인 부부가 만나서 살다 보면 갈 때까지 간 것처럼 싸우다가도 ‘해해’웃으며 금방 풀어지는 모습도 본다. 그렇게 어울려 사는
것이 인생이라는데, 국가간에 알력도 ‘칼로 물 베듯’ 금방 화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성경 말씀에 ‘마음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다.’라는 구절이 있다. 법정스님 말씀마따나 마음을 비우면(무소유), 더불어 살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예루살렘에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성역이 각각 있는 것을 보면, 이는 서로 배려하며 더불어 살라는, 의미심장한 신(God)의 계시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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