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다. 나는 새로운 날 무슨 놀이를 할까 생각한다. “얘, 오늘도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 언제나 엄마, 아빠의 똑같은 당부이다. “네”하는 편이 좋다. 귀찮은 말들이 뒤를 이을 테니까.
“하이 인수!” 친구의 목소리에 잠이 훌쩍 달아나서 같이 서로 밀치며 뛰어간다. 그는 하루 종일 재미있게 노는 동안 엄마의 부탁 따위는 염두에도 없다. “공부 잘했니?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인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엄마는 마음을 놓는다. 이런 무의미한 대화의 효과는 무엇일까. 그런데 이런 현상은 우리와 비슷하게 생긴 부모들의 공통적인 자위행동인 것 같다.
어떤 부모는 방과 후에 담임을 찾아서 “우리 애가 혹시 선생님께 괴로움을 끼치지 않았나요?”라고 묻는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마음 편히 모시는 것이 그들의 일인가. 학생들의 중요한 일은 단체생활을 통한 친구 사귀기. 여럿이 의견 나누기. 각종 학습활동이다.
미국 부모들은 다르다. “선생님 말씀 잘 따르라”는 말 대신 “오늘도 즐겁게 지내라”고 말한다. 자녀를 데리러 와서 첫 마디는 “즐겁게 지냈니?”다. 그들은 공부 잘하기를 바라지 않는가. 그게 아니다. 다만 테크닉이 다를 뿐이다.
어느 기관에서 한국 내 학생들의 ‘제일 듣기 싫은 말’을 조사한 결과 그 첫 번째가 ‘공부해라’ 이다. 듣기에 지긋지긋한 모양이다. 혹자는 말한다. “학생의 본분이 공부하는 것이니 당연한 격려가 아닌가.” 맞는 말이다. ‘격려’란 용기나 의욕을 북돋워 힘을 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듣기 싫다는 반응은 역효과를 냈다는 것을 말한다. 그 말 대신 “요즈음 어떤 공부를 하는지 알고 싶다. 알려 주겠니?” “공부하는 중에서 무엇이 제일 재미있지?” “필요한 참고서가 있으면 알려줘. 같이 구해 보자” 등 간접 화법으로 공부의 주제를 알아내고 협력하는 방법이다.
다음은 부모와 자녀의 ‘공부’에 대한 개념을 통일하는 일이 중요하다. “무엇이든 좀 배우라고 유치원에 보냈더니 매일 놀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부모의 푸념을 들었다. 이런 부모들에게 공부는 책을 읽거나, 글씨로 무엇인가 쓰는 작업이다. 토론, 토의, 분단별 연구, 아이디어의 창출, 작업에 대한 평가 등 책을 간접적으로 다루는 두뇌활동은 공부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
‘듣기 싫은 말’의 두 번째는 “A처럼, B처럼” 등으로 비교급을 사용하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너’라는 당사자는 점점 존재감이 작아지거나 아예 소멸해 버리게 된다. 이런 말들은 전혀 격려가 되지 않으며 듣는 사람은 자기 혐오증을 갖게 된다. 사과와 바나나의 겉모습이 다른 것처럼 맛에 제각기 특색이 있다. A학생과 B학생의 겉모습이 다른 것처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인품, 재능, 지식을 얻는 방법, 대인 관계, 일상생활 등에 차이가 있다. 여기에 향상의 속도가 빠르고 느린 차이까지 있어 우열의 차이를 말하기는 점점 더 힘들다.
특히 성장의 속도가 빠른 것을 기뻐하다 보면, 도중에 긴 휴식을 취하는 학생이 있다. 학과 성적이 활발하지 않아서 염려하며 지켜보는 동안에 어떤 계기가 오면 향상의 속력이 빨라지는 경우도 있다.
제각기 자기 자신의 속력으로 인생을 걸어가고 있다. 내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말은 ‘I like to be myself’라는 다부진 표현이다. 누구나 하나하나의 개체를 존중하고, 그들의 잠재력을 발견하여 최대한으로 발휘하도록 돕는 부모나 교사이면 좋겠다.
허병렬 / 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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