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파동 재연되나
유라시아 곡창지대 밀 수확 급감
곡물 메이저들도 시장 교란 부채질
가격폭등 추세 언제 멈출지 몰라
달러·유가흐름이 앞날 좌우할듯
러시아가 5일 곡물 수출 금지령을 발표함에 따라 세계 곡물시장 공급부족 우려와 가격 앙등이 현실화하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올해 세계 밀 수확량 예상치를 애초 6억7,600만톤에서 6억5,100만톤으로 3.7% 하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FAO는 유라시아 곡창지대인 러시아와 카자흐스탄ㆍ우크라이나의 가뭄을 수확량 감소 전망의 주요인으로 꼽았다.
곡물시장은 벌써부터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시카고 상업거래소에서 밀 값은 7월 한달 간 42%나 뛰었다. 51년 만에 가장 가파른 월간 상승률이다. 옥수수 가격도 덩달아 상승세를 탔고 사료부족 전망으로 미국 등지에서 육류가격도 오름세를 보였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옥수수에서 쌀까지 거의 모든 농산물이 기록적인 수준으로 상승한 지난 2008년 글로벌 식품파동을 상기시킨다”고 보도했다. 밀 생산량 세계 1~2위, 수출량 3~4위인 러시아의 가뭄이 세계 곡물시장에 던지는 불안감이 그만큼 크다.
AP통신은 러시아 정부가 이번에 수출 금지령을 내리지 않았어도 러시아의 밀 수출량은 40%가량 줄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 수출 금지령이 곡물시장에 미칠 파괴력이 예상 이상으로 클 것으로 예상됐다.
최근 중동과 아프리카로 수출될 예정이던 러시아산 밀 7만톤이 선적까지 마쳤으나 계약이 취소됐다. 부셸당 13달러까지 치솟은 2008년에 견주면 현재 밀값(부셸당 7달러)은 낮은 편이지만 23개월 만의 최고치를 기록한 데다 상승세가 언제 멈출지 모른다는 게 문제다. 밀을 파종하는 가을까지 가뭄이 이어지면 내년 농사도 기약하기 어렵다.
곡물가격이 폭등했던 2년 전 전 세계는 심한 몰살을 앓았다. ‘식량 무기화’ 바람이 맹위를 떨치면서 중국과 베트남ㆍ캄보디아 등이 잇따라 쌀 수출 통제에 나섰으며 가격 상승을 견디지 못한 아이티와 카메룬에서는 폭동이 발생했고 이집트 등지에서는 폭력시위가 벌어졌다.
2008년과 올해 모두 헤지펀드 등 투기자금이 유입되고 있어 곡물 파동이 재연될 조짐이 일고 있다. 2008년에는 식량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하지도 않았는데 곡물가격이 2배 이상 뛰었다. 투기 세력이 개입하면 수요공급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게 된다.
미국이 초저금리를 유지하는 있고 경제회복이 지연되고 있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투기세력들이 곡물시장에 베팅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더구나 투기세력은 거대 자본을 움직이는 곡물 메이저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곡물 메이저들이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시카고 선물거래소(CBOT) 등 선물시장에 개입해 가격을 조작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세계 곡물시장은 미국계 카길ㆍADMㆍ콘아그라 등 ‘7대 메이저’가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또 곡물의 생산ㆍ가공ㆍ저장ㆍ수송 등 전과정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 7대 곡물 메이저는 세계 곡물 교역량의 80%를 지배하고 있으며 저장 능력은 75%, 수출 능력 56%, 밀 제분에서 69%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농산물 가격의 흐름은 미 달러의 움직임과 금리ㆍ주식시장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채현기 대신경제연구소 경제조사실 연구원은 “주요 곡물 생산량 감소 전망이 이어지며 가격이 오르는 가운데 달러가 약세로 돌아서자 위험자산 선호도가 높아져 농산물 등 상품에 투기 자본이 몰린 것도 가격 상승을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곡물가에 영향을 주는 핵심 요인으로 주목되는 것이 석유 가격의 흐름이다. 2년 전처럼 석유 가격이 급격하게 오를 경우 곡물 가격 상승의 불쏘시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느린 경기회복 추세에도 불구하고 유가는 꾸준히 올라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는 전날 배럴당 82.47달러까지 상승했다.
게다가 시장 참여자들이 현재 유가 상승에 베팅하는 분위기 형성되고 있다. 트레이더인 GA 글로벌 마켓의 토니 로사도는 “유가가 80달러를 돌파하면서 70~80달러 박스권 탈출의 청신호가 켜졌다”고 말했고 필 프라인 PFG 베스트 애널리스트는 “2009년의 묻지마 투자가 재연되고 있다”고 전했다.
석유가격이 추가로 상승하면서 100달러선까지 치솟을 경우 밀 생산 감소로 촉발된 농산물 가격의 전반적인 상승요인으로 작용하며 지구촌 식량 위기를 부채질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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