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 내 중국 대사관 앞에서 탈북자 강제 북송 중단을 요구하며 목숨 걸고 단식했던 탈북자 조진혜씨.
미국생활이 3년째로 접어든 그의 녹녹치 않은 하루하루가 자유세계에 적응하고자 애쓰는 탈북자들의 안쓰러운 삶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북한과 중국에서 살 때처럼 늘 쫓겨다니며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불안한 삶은 아니라고는 해도 모든 것이 서툴기만 한 20대 초반 아가씨의 인생은 아직 쉽게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 세상에 좋은 사람도 많다는데 정말 몰상식하고 비인간적인 사람들을 만나 모욕을 당하고 나면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다.
“지난 몇 주간은 악몽 같았습니다. 그 일 때문에 어머니는 너무 충격을 받아 몸이 말이 아니십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동생도 맘고생이 심했고 학교도 제대로 못갔습니다.”
북한과 중국을 떠돌며 할머니와 아버지, 남동생 둘을 배고픔으로 잃고 네 번이나 강제 북송을 당하는 등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었지만 조 씨는 다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세 모녀가 거처할 곳을 찾다 마침 비엔나에 적당한 방이 있다는 광고를 보고 전화를 한 게 3주 전. 50대 미국인이 혼자 살고 있는 집이었다. 한 달 방세 1,200달러를 조건으로 계약을 하고 우선 800달러를 디파짓 했다. 조씨 가족을 돌봐주던 메릴랜드 소재 한인교회 운영 선교단체가 건물을 이사하는 바람에 쉘터로 사용되던 집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 상황 때문이었다.
건물 주인은 바로 본색을 드러냈다. 샤워는 언제 하라, 전기는 어떻게 쓰라는 등 갖은 간섭과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만일 말을 안들으면 너희 가족이 다시 추방되도록 하겠다. 추방되면 너희는 또 북송이다” 라며 갖은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학교에 다니는 동생과 하루 12시간씩 일을 해야 하는 조씨가 집을 비운 사이에 건물주의 핍박 아닌 핍박을 고스란히 감수하는 사람은 주로 영어가 서툰 어머니였기에 어머니의 고충은 더 심했다. 조씨 가족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생각한 그 주인은 결국 조씨 가족을 나가라고 명령했고 이들은 짐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내몰렸다.
너무 화가 나 경찰을 불렀다. 하지만 경찰 앞에서도 그 주인은 막무가내였다. 경찰도 조씨 가족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법적으로 건물주를 제재할 방법은 없었다. 더 기가 막힌 일은 건물주가 조씨 가족의 얼마 안되는 짐을 음식과 함께 마구 섞어 싸는 바람에 옷가지 등이 모두 엉망이 된 것이었다.
조씨는 “미국 법을 모르고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미국에서 이렇게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을 줄 몰랐다”며 “반드시 그 사람을 고소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씨 가족은 당장 거처할 장소를 찾는 게 급선무. 빨리 렌트를 다시 구하지 못하면 좁은 차 안에서 세 식구가 잠을 자야할 처지다.
조씨는 “탈북자들이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이렇게 도움을 다시 요청하는 상황이 벌어져 참담하다”며 “그러나 절대 구차한 모습은 보이지 않겠다. 앞으로 당당하게 일어서겠다”고 말했다.
중단된 영주권 수속도 기회가 되는 대로 다시 할 계획인 조씨 가족은 그들이 삶의 기반을 다시 다질 수 있도록 희망의 끈을 연결해줄 한인을 기다리고 있다.
전화 (425)329-9393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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