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병과 미국 해병은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다. 영국 해병을 모체로 한 미 해병은 미국 독립 이전에 발족을 보게 되고 역사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전투가 없다. 그들의 용맹스러움은 후세에 전해지고 해병 출신의 자만심은 대단하다.
이에 못지않은 한국 해병은 1949년에 창설되어 미국 해병의 도움을 받고 성장했다. 우리 해병 교관들을 미 해병에 위탁해 교육 받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한국 해병을 훈련시켰다. 내가 해병 115기로 훈련 받을 때 소대장들은 모두 미 해병훈련을 받은 부사관들이었다.
귀신 잡는 해병 신화를 남긴 김성은 장군 휘하 때와 그의 오랜 국방장관 시절 때는 해병대에 대한 두드러진 차별은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그 모습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더구나 5.16군사 혁명 때 육군이 앞장서야 할 대열을 해병부대가 차지해서 육군의 질시 대상이 되었다고 당시 김윤근 해병여단장은 그의 회고록에 기록했다.
병으로 입대한 나는 상남에서 야전 훈련을 마치고 진해 교육단에 돌아와 훈련을 받다가 군사 혁명을 맞게 되었다. 해병대 사령관이 3성 장군에서 4성 장군으로 편제가 바뀔 때가 해병대의 전성기였다고 한다.
그 이후 군부의 정치적인 결정으로 해병대는 해군에 흡수되었다. 한국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월남전에서 위상을 떨친 우리 해병의 전통이 후암동 사령부 폐쇄와 함께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여러 해 지나 노태우 정권 때 해병대 출신 대통령 비서실장의 노력으로 예산은 편성할 수 없는 군대로 다시 태어났다고 한다.
미 해병대도 이에 못지않은 차별대우를 받았다. 긴박했던 상황은 2차 대전이 끝나고 한국 전쟁 초기까지였다. 당시 존슨 국방 장관은 해병대를 육군과 공군에 흡수 시키려고 했다. 더구나 트루만 대통령이 해병대를 싫어해 이들을 더 궁지에 몰아넣었다. 1차대전 때 주방위군 포병장교였던 그가 해병대의 감군에 박차를 가했다고 하며 해병대 사령관은 합동 참모 회의에 참석도 못하게 하고 군 지휘관 대우도 못 받게 했다고 한다.
육군 위주 편제 하에서 해병대 해체가 논의됐던 상황에서도 그들은 전투 준비가 제일 잘된 부대였다. 한반도의 긴박한 상황에서 미 해병대는 낙동강 전투와 진해 마산 작전에 투입되어 적과 치열한 전투를 하다가 인천 상륙작전에서 성공을 거두며 전쟁의 양상을 바꾸었다.
미 해병들은 적과 싸우기도 했지만 해병대의 사활을 위한 싸움에서 승리했고 그 이후 해병대 해체론은 거론도 못하게 했다. 외국에 있는 미국 대사관의 경비를 도맡고 있는 그들은 세계 분쟁지역에 빠른 개입으로 미국외교의 입지를 높인다고 한다.
이번에 연평도 포격기습을 국회에서 논의한 해병 130기 홍사덕 의원은 해병들이 정치 지도자들의 잘못으로 희생되었다고 비분강개 했다. 타군을 위주로 한 예산 편성에서 한국 해병대는 희생자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군사 전문기자는 한국 해병대를 춥고 배고픈 군대라고 하며 귀신 잡는 해병은 그 용맹성에도 불구하고 예산 배정이나 각종 사업의 우선순위에서 타군에 밀린다고 지적한다.
이번 포격에서 구조 헬기가 한대도 없어 배로 부상병을 실어 날랐다는 신문 보도가 있었다. 내 젊음을 3년 바친 모군이어서 마음이 더 아프다. 미 해병대처럼 정치에 휩싸인 역사는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한다. 이번에 장렬이 전사한 후배들에게 선임 해병으로서 예우를 갖춘다.
이종혁 경영학 박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