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타일 사업을 할 당시 전시회에서 바이어와 함께한 필자(오른쪽))
종합상사 경험
NY행 결정은 연고가 있어서 한 결정은 아니다. 막연히 세계에서 제일 큰 도시에 가서 경험을 해야 큰 사업을 할 수 있지 않나 하는 막연한 생각에 왔고, 그러나 이 큰 도시에 아는 사람이란 New Brunswick 근처에 같은 한때 같은 교회에 다녔던 교인 한명, 여기에서 짐을 풀고 어느 분야에서 경험을 쌓아야 될까 생각 해보니 섬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섬유산업이 사양사업이라고들 많이들 기피하지만 당시엔 옷, 원단 혹은 옷가게 등으로 교포들이 큰돈을 벌 때라 내 관심도 그 방향으로 돌리게 되었다. 근래의 섬유사업은 피 튀기는 경쟁, 약한 마진, 과잉재고, 악성채권 관리 등으로 모두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만큼 어려운 업종이 되어있지만 70년대에 이어 80년대 중반까지는 이사업으로 우뚝 선 교포들의 성공담이 신문에 자주 오르내릴 때라 나 또한 이 분야에서 경험을 쌓고 도전을 해봐야겠다고 결심을 하게되었고, 그래서 종합상사에 입사지원서를 넣게 되었다.
당시 내 세대의 최고직장은 종합상사였고 그다음이 증권 회사순이었는데 나는 상사 맨이 되어 전 미국을 상대로 섬유사업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응모를 한곳이 L상사 섬유부였는데 250대 1의 경쟁 속에 입사를 한 것이다. 여기에는 나의 이런 점이 다른 응모자와 차이가 있었다. 취업을 원했던 종합상사에 입사 하고자 하는 나의 진지함을 알려주고 싶어 매일 아침 찾아가 인사를 하는데 삼일 째 되는 날 담당 부장이 나를 기억하며 자기 사무실로 부를 때 합격이 되
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5세대인 내가 매일 찾아오는 것이 다른 Applicants와 차별이 되어 선발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고등학교때 이민을 와서 군대 같은 조직생활을 경험해 보지 못한 내게 이 직장의 경험은 참으
로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물론 나의 많은 순수함이 이 사회경험을 통해 변질이 되기도 했지만 대기업 조직 속에서의 인간관계의 어려움, 작은 중소기업들의 생리, 그리고 신입사원으로서 기업 문화의 하나인 “딱거리”를 하며 조직의 구성원이 되는 법 등을 배웠다.
직장의 상사가 골프를 치겠다고 하면 주말에 새벽같이 나가 제일먼저 도착해 티켓을 끊어놓고 “아침식사 하셨습니까? “커피는 밀크와 슈가 넣어 여기 준비해 두었읍니다.” 하고 먼저 보내드리고, 밤에 술 접대 자리가 있으면 술과 노래에 새벽 3~4까지 노는 상사들의 “Good Time” 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상사들 콜택시 잡아 집에 보내드리고 홀로 새벽에 전철 타고 가곤했다. 그때에 확실히 하나 배운 것은 아직도 밤새 술을 먹어도 이런 경험들 때문에 그런지 속칭 필름이 안끊긴다는 것이다. 종합상사 경험을 통해 무역을 경험하게 된 후로, 나는 쩐 장사라고 하는 원단쟁이부터, 침대커버, 넥타이, 우산, 파인 주얼리, 필로우, 윈도우 커튼, 의복, 스카프와 장갑, 모피 등 수많은 업종을 경험하며 많은 인생 경험을 하게 되었고 이 기간을 통하여 많은 돈도 벌 수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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