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료사업
회사 인수를 한 후 본사의 물류창고를 보여주는데 풋볼 필드의 4-5배가 되는 장소에 30 피트정도높이로 아이스 티 제품이 쌓여있는데 입이 떡 벌어질만큼 엄청난 물량이었다. 그런데 그 창고도 항시 부족하다고 하니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였지만 NY에서만 연 1,000만 상자를(97’ 기준) 판매 한다고 하니 이해가되었지만(뉴욕에서만 연 1억5,000만 달러) 그리고 법인 어카운트(주로 외상거래) 를 뺀 하루 현금 수금액만 50만달러이니 이렇게 환금성이 좋은 비즈니스는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또한 뉴욕 시 다섯개의 보로들 중 제일 인구밀도가 좋은 브롱스 지역을 샀으니 황금빛 미래를 꿈꾸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참 뜨는 티 음료회사의 브롱스 지역 영업권과 유통망 인수 후 약 한달 후의 느낌은 회사 인수 전의 상상과 현실은 그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래 전 신문에서 어떤 분이 외국인 소유의 Trucking 회사를 인수한 후 한국적인 정과 끈기로 직원들을 감동시켜 회사를 키웠다는 애기는 우리가 어렸을 때 접했던 백설공주 같은 동화 속 상상에 불과했다. 동양인인 내가 본사, 거래처 혹은 직원들 앞에서 그런 인간적인 면을 보이면 아프리카의 초목에서 뜨거운 태양아래 피 맛을 보려고 기다리는 사자들 앞에서 숨을 헐떡거리는 들소 그것의 모습일 뿐이었다.
나의 첫 이민생활의 고향이었던 보스턴을 떠나 뉴욕에 온 후 초창기에 1여년 브롱스에 살아본경험이 있어 이 지역 자체에는 별로 거부 반응이 없었으나 3만sq ft의 웨어하우스를 우범지역) 에서 운영하는 것은 생명을 담보로 매일새벽서부터 전쟁을 하는 것이었다. 첫 달이 지나지 않아, 월요일 새벽에 출근을 하니 회사의 정문 전체가 대형트럭에 밀려 박살이 난 채 열려있었다. 전 사장이 있었을 때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겠지만, 내가 인수후 한 달만에 이런 일이 발생했고 이후 또 주기적으로 발생했다.
내게 회사를 판 사람은 이태리 사람으로 본사 회장과는 1950~60년대부터 가족관계로 이어진 친구들 사이였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펜실베니아 주에서 밀주를 만들어 브롱스 지역에서 팔던 이탈리안 마피아 패밀리의 일부였다(미국의 많은 술과 음료의 공급업자들은 주로 이런 부류에서 많이 시작했기에 미국내 주류-메인 음료시장 진입이 그래서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두 가족이 밀주 비즈니스를 브롱스에서 오랫동안 하다가 내게 회사를 판 아버지란 사람이 경쟁
패밀리들에 의해 총에 맞아 죽게 되었고 친구인 아버지가 그 아들을 옛정을 생각해 자기 운전사들의 보조로, 커서는 본인 차의 보디가드로 쓰다가 음료 회사가 크면서 브롱스의 영업권을 주게 되었다.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감히 이들 가족이 경영하는 회사에 대한 이런 종류의 사건은 발생할 수가 없었다. 또 본사가 미 전 지역을 직영하지만 내 지역만큼은 유일하게 개인이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다. 물론 이런 관계로 탄생한 원인이 후에 나와 내 가족이 차마 감당 할 수 없을 정도로 인생에 있어서의 고통과 추락을 준 이유가 되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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