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앞지르고 명실공히 전 세계 경제의 두 번째 파워로 떠오른 중국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워낙 베이지역은 오래 전부터 중국 사람들이 거주하며 나름대로 중화 문화권을 형성 한 곳이다.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은 관광단지로 유명하지만 문화적으로는 그리 자랑할 만한 곳은 되지 못했다. 더구나 광동 출신 이민들로 형성된 곳이어서 상업어인 광동어가 사용되고 북경어는 그리 사용되지 않다가 중국과 대만과의 교류로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백인 학생들이 중국 학교에 등록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중국사립 학교에 눈을 돌리는 백인 부모가 점차 늘어난다. 방과 후의 대안학교가 아닌 정규과목을 영어와 중국어로 가르치고 있다. 1년 학비가 2만여달러이며 입학하기가 수월하지 않다고 한다. 이런 ‘이머전’ 중국어 프로그램이 비중국계 학생들로 하여금 중국 문화를 알고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케 한다. 참 대단한 교과과정이다.
백인들의 정신적 고향인 유럽을 제치고 아시아에 눈을 돌리는 부모의 수가 많다. 백인 학생들의 중국어 구사는 중국계 학생들과 다름없다고 한다. 이렇게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이 미국의 국제 정치나 외교에 지도자로 급부상하고 코스모폴리탄이 되어간다.
중국어를 완벽히 구사하는 경력을 인정받아 중국 주재 대사로 발탁된 한 백인 외교관이 있다. 그는 몰몬교 선교사로 대만에서 선교하며 중국어를 공부했다.
그는 아시아계를 제치고 중국통으로 미국 사회에서 인정을 받았다. 그 이외에도 우리에게 한국 정치학 전문가로 알려진 로버트 스칼라피노 박사도 실은 2차 대전 당시 중국어 담당 장교로 미 해군에서 근무했다. 이렇게 우리 일상생활에 오랫동안 영향을 준 중화문화를 ‘이머전’ 프로그램을 통하여 다른 모습으로 보게 된다.
이웃 중국은 우리에게는 참 가깝고 먼 나라다. 우리 조상들의 생활과 사고는 중화사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왕이 바뀌면 북경의 허락을 받아야 했고 독립된 국가의 왕조라 해도 일거수일투족을 그들의 통제를 받았다. 언어나 문화 자체도 그들의 영향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나는 한국에서 한자를 완전히 폐기한다고 했을 때 이의를 제기하곤 했다. 19세기에 유럽 여러 나라들이 라틴 문화권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그런 역사를 우리도 겪었다. 나는 이곳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때 유럽 언어의 근원인 라틴어를 배워야 하는 것처럼 중국어가 우리에게 그런 언어라고 생각한다.
한국전이 끝난 몇 년 후 어떤 대학생을 만났다. 당시 인기가 없던 외국어 대학 중국어과를 다니던 학생이었다. 자기가 왜 중국어를 공부하게 됐는지 퍽 야심차게 이야기하던 것이 기억난다. 그는 우리의 역사를 알기 위하여 중국어를 공부한다고 했다. 그의 말이 하도 고무적이어서 중국어를 독학하려는 생각을 잠시 해본 적이 있었다.
나는 한문을 공부하면서도 그것이 중국의 글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리고 이곳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중국 사람들과 한문이 우리글도 될 수 있다고 이야기도 한다. 우리의 역사와 고전을 알려면 한자를 알아야 된다고 한자를 모르는 젊은 세대에게 때로는 강조한다.
이렇게 우리는 한자 문화권에서 자라면서 우리의 입지와 주체성을 생각한다. 미국에 살면 자연히 한자와 단절된 생활을 하리라고 했는데 한자와 중국문화를 접하는 생활을 오래 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역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세계 속에서의 우리를 돌아보며 여러 문화를 같이 포용하는 그런 지혜를 가져야겠다. 다른 문화와 함께 중국문화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말도 배우는 그런 마음의 자세다.
이종혁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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