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든 종이컵이 마룻바닥에 떨어졌다. 어린이들이 그 둘레에 모였다. 제니가 재빠르게 휴지 한 뭉치를 가져와 쏟아진 물을 닦았다. 옆에 서있던 세진이가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넣고 어린이들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 때까지 멋쩍게 서있던 데니가 작은 소리로 “땡큐”라고 하고, 교실은 제자리를 찾았다.
각자가 좋아하는 동물을 그리고, 그에 대한 설명을 쓰기로 하였다. 민호가 “나 크레용 없어요”한다. “내가 빌려줄게” 두서너 명이 소리치며 크레용 곽을 들고 그 쪽으로 간다. 크레용뿐인가. 연필이 없다는 어린이가 있다. “이걸로 써” 애라가 제 연필을 내주고, 자기 가방 속에 깊이 넣었던 필통 속에서 연필을 꺼낸다. 여기는 6살, 7살 어린이가 모인 한국어 교실이다.
필자는 아무 설명 없이 착한 일을 한 어린이들에게 스티커를 하나씩 준다. 그들은 ‘나는 자라는 나무’라고 쓴 나무그림에 그것을 붙인다. 그 나무가 꼭 차려면 서른 번 착한 일을 해야 한다.
어린이들이 다른 교실로 가서 공부할 때는 제각기 짐을 들고 가게 된다. 그 짐이 제법 많다. 남자들의 태권도복, 여자들의 한복, 거기에 각자의 덧옷, 비오는 날의 비옷 등이 있다. 어떤 학생은 아예 공항에서처럼 여행용 가방을 끌고 다닌다. 그런데 걱정 안 해도 된다. 그들이 서로 도와가며 이동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어린이들의 세계를 눈여겨보면 퍽 재미있다. 항상 다른 친구들의 도움이 꼭 필요한 어린이, 친구들 돕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어린이, 다른 친구를 돕지도 않고 도움을 받지 않는 어린이, 남을 돕는 일에 전연 관심이 없는 어린이 등 우리 사회의 축소판 같은 현상이 어린 시절부터 확연히 보인다.
본인이 타고난 DNA와 달리 이런 현상들은 주위 사람들의 관심, 격려, 칭찬으로 바뀔 수 있다고 본다. 가끔 자녀의 선행을 알리면, 그것보다 공부 잘 하길 바라는 부모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가정교육의 목표도 우수한 성적내기, 성공하기, 부자 되기 등이 된다. 이와 같은 것들이 일차적인 목표일까. 무엇보다 인간의 기본적인 것이 목표가 되길 바란다.
사랑하기, 친절하기, 서로 돕기 등의 중요함을 깨닫고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일이 아닐까. 가정이나 학교에서 이런 기본적인 것을 깨달아서 실천할 수 있는 기초를 닦는 것이 교육이라고 본다. 삶이 다른 사람과의 싸움이고, 거기서 이기지 않으면 살 수 없고, 남보다 부자가 되지 않으면 편안히 살 수 없다는 인식을 어린이들에게 주고 싶지 않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이 타인과의 경쟁 터가 아니고, 서로 도우며 사는 즐거운 곳이기 때문이다.
생존경쟁이란, 인간성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형태이지 결코 삶의 목표는 아니다. 어린이들에게 세 가지 열쇠를 주어 마음 꽃을 피우도록 돕고 싶다. 그것은 바로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용서 하세요’가 될 것이다.
자녀들의 마음 꽃은 계절에 관계없다. 열매의 모양과 맛이 다양하다, 마음 꽃은 각 개인의 일생동안 핀다. 마음 꽃에 필요한 비료는 어렸을 때 주위 사람들로부터 받는 인정, 칭찬과 격려이다.
허병렬
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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