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LA와 OC에서 해외 금융계좌 신고 세미나를 가졌다. 유료 세미나라서 참석자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당초 우려와는 달리 170여명이 참석하였다. 해외 금융계좌 신고가 한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관심사인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인 15명의 세무 전문가가 워크샵에 참가해서 해외 금융계좌에 관련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이다. 규정을 잘 몰라서, 또는 사태의 심각성을 잘 파악하지 못해서 “걸릴 가능성이 없으니 안 해도 된다”라는 식의 잘못된 조언을 하는 회계사나 세무사가 없어졌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이다.
개인 상담을 한 한인들의 상황과 해법은 제각각이지만, 모두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억울하다는 것이다. 한국에 살면서 합법적으로 일해서 번 돈, 부모로 부터 상속이나 증여 받은 돈, 이미 한국에 적절한 세금을 내 온 돈들이다. 단지 법을 몰랐고, 그래서 신고를 못한 것뿐인데 최고 잔액의 25%를 벌금으로 빼앗긴다니, 아무리 법이라도 이렇게 무지막지 할 수 있느냐는 하소연들을 한다.
클라이언트의 상황을 파악하고, 해법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회계사는 감정을 배제해야 한다. 객관적 시각을 유지해야만 올바른 상황 파악과 합리적인 해결책 모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억울하다는 감정에 객관적 이기가 쉽지 않다. 입법 취지가 세금 포탈을 목적으로 해외로 도피한 자금을 색출하여 추가 세원을 확보하는 것일진대, 선의의 위반자에 대한 구제에 소홀하다.
지난 6월2일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시민권자나 영주권자가 해외 금융자산 자진신고에 참여할 경우 벌금을 5%로 낮추어 주겠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벌금 계산에 포함될 수도 있는 부동산같은 비 금융자산의 가치를 벌금 계산에서 제외해 준다. 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보유한 채 한국에 살고 있는 적지 않은 숫자의 한인이 혜택을 볼 수 있다.
외국에 오랫동안 살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예외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이번 새로운 규정은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수 계층의 미국인은 해외 금융계좌 신고라는 규정을 모르거나 부득이하게 위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미국 정부가 인정한 셈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에 산지 얼마 안 되는 이민자들을 위한 예외 규정도 조만간 생기기를 기대한다.
이제 대한민국 정부가 나설 때다. 힘없는 기도만으로 우리를 위한 예외 규정이 생길 수 없다. 미국에 살고 있는 영주권자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미국에 살고 있는 시민권자도 한국인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미국정부에 부당하게 재산을 뺏기지 않도록 외교적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이민 전에 사 두었거나 부모가 물려준 아파트를 10억원에 처분했다면 지난 8년 동안 하루라도 은행 계좌에 잔고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이 잔고에 25% 벌금을 낸다면 2억5,000만원이다. 대상자가 1만명이라면 2조5,000억원이고, 10만명이라면 25조원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부당하게 미국 정부에 엄청난 액수의 벌금을 내야할 위험에 직면해 있다. 그 엄청난 액수의 벌금은 결국 국부가 아무런 대가없이 국외로 유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힘없는 국민들을 대신해서 대한민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의 안녕을 위해서, 그리고 무의미한 국부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서 대한민국 정부가 미국 정부에 이민자를 위한 예외 규정을 만들라고 요구할 때다.
당장은 실현가능성이 낮아 보여도 이런 규정의 타당성과 당위성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고 본다. 그것이 국력이고 외교력이라고 생각한다.
최재경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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